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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고단함

흐르는 세월 따라 누구나 늙게 마련이지만 나이 먹는 슬픔에 비할까. 길을 걷다가 걸음걸이가 불편한 어른을 보면 유심히 보게 된다. 저 분도 막 피운 꽃처럼 싱그럽고 화사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허리까지 굽었다. 무릎이 아프신지 지팡이에 의지한 발걸음이 위태하기 짝이 없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춰 서고 또 몇 걸음 옮기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앉기도 힘들고 서 있기도 힘들고 걷기는 더 힘들고,, 저 어르신의 현재가 딱 그렇다. 노년의 고달픔이 슬프다. 교회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준다기에 가는 길이다. 거기다 천 원짜리 지폐도 한 장씩 받을 수 있단다. 작년까지 5백 원짜리 동전을 나눠줬는데 올해부터 천 원으로 올랐단다. 천천히 멀어지는 노인을 보며 저 걸음이 조금만 수월했으면 했다.

다섯 景 2018.02.21

해변의 묘지 - 김창균

해변의 묘지 - 김창균 나는 거기서 최초의 부드러운 한 사람을 만나는 중이다. 부화 준비를 막 끝낸 알처럼 금이 간 해변의 묘지 한 기 그 벌어진 금 사이로 부는 소금기 밴 바람들. 혹시 저 속에도 저물 대로 저문 생들이 모여 저녁밥을 끓이고 있을까 처녀의 젖가슴처럼 봉긋한 저 속엔 무슨 씨앗이 들어 있어 갈대가 자라고 키 작은 소나무가 자라고 때론 노란 원추리꽃도 피는 것일까. 단 한 번도 세상과 바다 그 어느 쪽도 편애한 적이 없었다는 듯 바다 쪽으로 반 육지 쪽으로 반 귀를 열어 놓고 웅크린 자세로 평생을 앉아 묘지들은 낮게 아주 낮게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어느새 나는 해변의 무덤 한 기 내 속에 들인다. *시집,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세계사 적멸보궁 - 김창..

한줄 詩 2018.02.20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 임병걸

시와 경제는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들이 시만 써서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이것을 증명한다. 시를 가까이 하면 가난하다. 부정하고 싶지만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시를 돈으로만 연결시키면 인생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인생에서 돈이 중요하고 그 바탕엔 경제적 튼튼함이 요구되지만 돈이 안되는 일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각종 취미 생활이 삶을 풍성하게 하듯 시 읽기도 마찬가지다. 이 책도 그런 면에서 시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인 임병걸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KBS 기자가 된다. 보도본부 경제부장와 앵커를 거쳐 지금도 KBS에 몸 담고 있다. 그는 관심 분야 만큼이나 다방면에 식견을 가지고 있다. 경제, 문학, 역사, 예술 등 폭넓은 지식으로 전형적인 교양인이다. 이 책을..

네줄 冊 2018.02.19

고독사, 혹은 과로사 - 홍신선

고독사, 혹은 과로사 - 홍신선 혼자 오래 견디는 외로움도 너무 지나치면 과로 아닐까 때 이른 소한 추위 속 세상 뜬 독거 할멈, 고독사일까 과로사일까 반쯤 타다 꺼진 연탄 서너 장 나뒹구는 쪽방 앞엔 늙은 한 마리 반려견이 헌 박스나 폐지 틈에 매어있었다는데 판독용 엑스레이 필름처럼 생전엔 비닐가림막 청테이프로 누덕누덕 덧붙인 극빈의 깊숙한 내부나 둘은 사이좋게 들여다 보았다는데 알아듣는 말귀 몇 마디엔 말귀를 뚫어 종신(終身)토록 목줄처럼 서로를 서로에게 걸고 살았다는데 그게 옛 창가(娼街)의 비좁은 골목 맴돌며 낑낑대며 애완용 왕따의 나날들을 헤매던 둘만의 필살기였다는데 혼자 견디는 고독력도 너무 오래 된힘 쓰다보면 못 버텨 낼 과로란 듯 훌훌 털어낸 이제 뭇 지각 모두 꺼버린 주인의 긴 잠속에 끝..

한줄 詩 2018.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