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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에 대한 생각 - 비 윌슨

괜찮은 책 한 권을 읽었다. 내가 말하는 괜찮은 책은 내용, 가격, 책모양(디자인) 등 세 박자가 맞는 책이다. 이 책이 딱 그렇다. 내용은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내 입으로 어떤 음식을 집어 넣을 것인가에 대한 세밀한 제안이다. 책값은 500 쪽이 넘는 비교적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17,800 원이다. 디자인 또한 호화스럽지 않으면서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종이 책 안 팔린다는 불황이 무색하게 쏟아져 나오는 작금의 출판계에서 이런 책은 귀하고 신선하다. 제목처럼 먹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다. 유튜브에도 피디수첩 같은 시사 프로보다 먹방이 월등히 구독자 숫자가 많을 걸 봐도 알 수 있다. 어디가면 뭐가 맛있다는 내용이면 책이 확 팔릴 텐데 이 책은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 ..

네줄 冊 2020.04.18

꽃길 - 육근상

꽃길 - 육근상 시오 리 벚꽃길이다 저 꽃길 걸어 들어간 할머니는 벼룻길 활짝 피려 했던 것인데 아버지 손잡고 얼마나 멀리 갔을까 훌훌 버리고 얼마나 낯선 길 들어섰을까 걸어간 자리마다 벗어놓은 흰 옷들 가지런하다 할머니 들어간 자리 아버지 들어가 뿌리 내리고 꽃가지 마다 아이들 내어 달빛달빛 흔들리고 있다 *시집, 만개, 솔출판사 滿開 - 육근상 꽃놀이 갔던 아내가 한 아름 꽃바구니 들고 흐드러집니다 선생님한테 시집간 선숙이 년이 우리 애들은 안 입는 옷이라고 송이송이 싸준 원피스며 도꾸리 방 안 가득 펼쳐놓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온종일 살구꽂으로 흩날린 곤한 잠 깨워 하나하나 입혀보면서 아이 예뻐라 아이 예뻐라 # 육근상 시인은 1960년 대전 출생으로 1991년 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한줄 詩 2020.04.18

목련 - 사윤수

목련 - 사윤수 너는 사월의 폭설 송이송이 주먹만 한 함박눈이 허공에 가득 떠 있는 벽화야 백 년을 한순간이라 생각하고 눈 감았다 떠봐 그럼 하얀 새떼가 점묘법으로 내려앉아 있는 것도 보여 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 꽃이 만발했다는 건 거기 나무 위에 목련존자 한 채가 가부좌 틀고 있는 거라네 언젠가 내가 비틀거리며 나무를 세차게 흔들어 그를 떨어지게 한 적이 있다는데 나는 기억이 없네 멀리서 보면 목련꽃 핀 나무는 그게 아주 크고 둥근 꽃 한 송이야 지난밤 누가 그 꽃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리자 하얀 새떼가 화르르르 날아올랐어 깃을 치며 어둠 속 높이 사라져갔어 이 모든 것이 꽃 너머의 꽃 얘기 당신과 나의 짧고도 긴 해후였으니 어디쯤에서 목련존자는 투덜거리며 일어나 흙을 털고 있겠지 폭설의 꽃잎도 고요..

한줄 詩 2020.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