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식사에 대한 생각 - 비 윌슨

마루안 2020. 4. 18. 19:03

 

 

 

괜찮은 책 한 권을 읽었다. 내가 말하는 괜찮은 책은 내용, 가격, 책모양(디자인) 등 세 박자가 맞는 책이다. 이 책이 딱 그렇다. 내용은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내 입으로 어떤 음식을 집어 넣을 것인가에 대한 세밀한 제안이다.

책값은 500 쪽이 넘는 비교적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17,800 원이다. 디자인 또한 호화스럽지 않으면서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종이 책 안 팔린다는 불황이 무색하게 쏟아져 나오는 작금의 출판계에서 이런 책은 귀하고 신선하다.

제목처럼 먹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다. 유튜브에도 피디수첩 같은 시사 프로보다 먹방이 월등히 구독자 숫자가 많을 걸 봐도 알 수 있다. 어디가면 뭐가 맛있다는 내용이면 책이 확 팔릴 텐데 이 책은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 작가인 비 윌슨은 현재 각종 매체에 음식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는 영국인이다. 다소 지루할 내용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힘도 저자의 글솜씨 덕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맛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내 경우 찢어지게 가난 했던 집에서 자란 탓에 어릴 때부터 영양 따지면서 음식을 먹지 않았다. 배고픔을 면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그런 것이 뭐 중요하겠는가. 요즘은 너무 풍요로워서 되레 탈이다. 버려지는 음식이 환경을 오염시킬 정도다.

물론 지구촌에 굶주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먹는 것이 얼마나 신성한지를 자각한다면 버려지는 음식이 줄어들 것이다. 음식도 시대와 함께 변했다. 물론 옛날로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다. 통곡물이 몸에 좋다고 절구로 찧어 밥을 하는 사람은 없다.

옛날에는 실제 절구가 필요했다. 보리를 찧고 키로 까불러 씻으면서 돌을 일궈야 했다. 뭔 소린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게다. 메밀전이라도 먹으려면 절구에 찧어 멧돌에 갈아야 했다. 그 많은 노동력은 물론이려니와 과연 그 시대 사람이 건강했을까.

평균 수명 또한 옛날이 현저하게 낮았다. 이 책에도 언급하는데 1960년대 한국인 기대 수명은 58세였다. 저자는 몇 군데 구절에서 한국의 식생활과 음식에 관해 언급을 한다. 한국인이 비교적 채소 섭취가 많고 음식 또한 저열량이어서 좋단다.

그렇다고 우리의 식생활이 마냥 안전한가. 소중한 내 남편, 귀한 내 아이의 건강을 위해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도 간과하는 것이 있다. 가령 미세 먼지 방지한다고 집안에 공기청정기 돌리고 황사 마스크 쓰고 외출해서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먹는다.

예전에 고급 식당 주방에서 알바를 해본 경험에 의하면 호박, 브로컬리, 버섯, 피망 등 박스에 든 모든 야채는 씻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내가 씻으려고 했더니 언제 한가하게 그러느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농장에서 친 농약은 그렇다치고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야채는 미세 먼지가 엄청 묻었을 것이다.

식당에서든 제과점 식빵이든 이 음식을 누가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며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쏘시지 만드는 것 보면 못 먹는다는 말도 있지만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고 먹는 것이 좋겠다.

음식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대안을 전달한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행에 뒤처진 입맛을 갖자.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음식이 돈을 아낄 수 있고 다양한 식품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만 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나 앞뒤 내용은 아주 유용한 제안이다.

내 입에 음식을 집어 넣는 사람은 자신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배가 부르다. 내 돈 주고 산 책이지만 이런 좋은 책을 쓴 저자와 번역해준 역자, 책을 만든 출판사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