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양파 - 김이하
사과와 양파 - 김이하 햇살이 들다 고개를 꺾고 기웃거리는 창가에 한 알 남은 사과는 한 달도 넘게 뒹굴거리던 것이고 두 알이 남은 양파는 한 달이 못 된 것이다 국을 끓이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혹은 생으로 먹어치울 식욕도 없이 그렇게 내 삷은 흘러왔던 것이다 사실 그것들이 검정 비닐 봉지에 담겨 삼층으로 마지못해 올라올 때도 뚜렷한 목적을 붙인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이들은 그 창가에 놓였고 햇살이 애를 닳고 목을 꺾게 한, 오히려 그들의 생존이 더 간절하게 똬리를 튼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오, 간절한 시간들 언덕배기를 오르던 아버지의 굵은 종아리 스러지고 한꺼번에 허물어지던 어머니의 무릎 애인에게서 퐁겨 오던 그 단내 나는 시간들마저 의지가지없던 긴 세월 그러나 삶은 또 한 번 온다 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