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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에 출렁이다 - 박경희

윤슬에 출렁이다 - 박경희 툇마루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간간이 못 물결로 우는 소쩍새와 대나무 숲에서 휘청이는 파랑새 떨림이 내 안에 든다 뭉텅이로 앞산을 지나가는 산 그림자 참나무 숲도 무르팍 같은 큰 바위를 쓸고 간다 채반 가득 고사리 말라가고 늘어지게 하품하며 늙어가는 개밥 그릇에 박새가 여러번 왔다 간다 그런데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흙 묻은 고무신 한 켤레 댓돌 위에 앉아 있을 뿐, 다람쥐 자갈 밟는 소리에 넘어지는 햇살만 있을 뿐 어느 날 나는 사람이 아니다 *시집,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창비 폐염전 - 박경희 눈꺼풀 내려앉은 눈을 비비다가 숟가락이 밥을 놓쳤다 산고랑 볕 짧게 드는 곳에서나 문고리에 걸어둘 법한 휘어진 숟가락 한사코 제대로 넣어보겠다고 이 없는 굴로 퍼 나른다 퉁퉁마다..

한줄 詩 2020.05.11

똥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진지하게 - 로즈 조지

흥미롭게 읽었고 내용 또한 참으로 유용한 책이다. 과연 내가 눈 똥이 어디로 가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똥은 더러운 것이라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일상에서는 가능하면 똥이라는 단어조차 언급하기 꺼려한다.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듯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반드시 몸속을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사람이 죽을 때면 곡기를 끊듯이 죽어야만 이 배설 행위 또한 멈출 수 있다. 초등학교 때 변소에서 나오는 예쁜 여선생님을 보고 잠시 실망했다. 저렇게 예쁜 사람도 똥을 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제에 참석한 여배우 또한 똥을 눈다. 이 책을 쓴 사람도 여자다. 우리 삶의 틈새에 자리한 소외된 주제들에 관심이 많은 저널리스트답게 오랜 기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화장실에..

네줄 冊 2020.05.10

거리에서의 단상 - 백성민

거리에서의 단상 - 백성민 절룩거리며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반 무릎씩 접히는 어깨의 무너짐으로 골목길을 돌아 멈춘 자리 재활용 봉투의 깔끔함 옆으로 빈 소주병 두 개가 나뒹군다. 고운 여인의 목선 같은 병목안의 온도는 몇 도일까? 뜨거움이 빠져나간 자리 아무리 토악질을 해도 게워낼 없는 어지럼증이 허기를 일으켜 세운다. 생목을 앓듯 넘어가는 하루 은밀함을 감춘 불빛들이 촉각을 세우고 영역 밖으로 밀려난 발걸음은 저문 길을 따라 걷는다. 무릎마다 채워지는 바람 소리 얼마나 더 걸어야 나는 한 칸 반 어둠을 등에 질 수 있는가. *시집/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인 것처럼/ 문학의전당 이 지상 어디쯤 - 백성민 하늘빛 그리움 먼저 풀어내고 햇살 한 줌에 올올이 영근 빛을 담아내는 웃음 ..

한줄 詩 2020.05.10

오월의 편지 - 나호열

오월의 편지 - 나호열 절뚝이며 느리게 온 봄은 목발의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아쉬운 사람의 얼굴을 닮은 목련은 눈을 감아도 올해도 피고 지고 눈물 떨어진 자리에 자운영 행여 밟을까 먼 산 바라보면 뻐꾸기 울음소리에 푸르게 돋아 오르는 이름이 있어 나는 편지를 쓴다 외로워 별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별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별인지 몰라 더 외로운 사람에게 주소를 몰라도 가닿을 편지를 쓴다 심장에서 타오르는 장미 한 송이 라일락 향기에 묶었으나 그예 남은 그림자 한 장 봄이 지나간 자리에 놓인 꿈이라는 한 짝의 신발 우리는 모두 그 꽃말을 기억하고 있다 *시집/ 안녕, 베이비 박스/ 시로여는세상 몽유(夢遊) - 나호열 어떤 꽃은 제 몸을 사루면서 빛을 내밀고 또 어떤 꽃은 제 마음을 지우면서 향을 뿌리듯 허공에 ..

한줄 詩 2020.05.07

쏘가리, 호랑이 - 이정훈 시집

백무산 시집을 구입하면서 호기심 가는 이 시집 제목이 눈에 띄었다. 들어본 적 없는 시인이라 그저 호기심이었다. 시인도 낯설지만 시집 제목으로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다. 간단한 약력에서 첫 시집임을 알았으나 제목이 성의 없게 보였다. 이런 제목을 정하기까지 시집 주인은 물론이고 출판사 당사자도 제목을 뭘로 정할까를 두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것이다. 생애 첫 시집인데 시인은 또 얼마나 설렜겠는가. 그 설렘에 한심한 독자는 생뚱맞게 이런 딴지를 건다. 첫 장에 실린 를 읽으며 이 딴지걸이는 바로 무장해제 되면서 구입을 결정했다. 처음 만난 시인의 시 한 편 읽고 감동씩이나 하기에는 성급했으나 한 편씩 읽어가면서 든 생각은 '진짜가 나타났다'였다. 이 시인의 시가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내 맘대로의 느낌..

네줄 冊 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