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공원, 사계 - 정기복 모멸이 얼음덩어리로 박힌 가슴팍으로나마 기어이 오면 이 언덕엔 어느덧 노랑제비꽃 피웠다 멸시와 비웃음 뒹굴고 비겁과 굴종이 길에 차이는 발걸음 이곳에 오면 두터운 먹장구름 아래 곧추선 물푸레나무 서슬 푸르다 구르는 비애와 날리는 체념 끝에 이곳에 오면 짧게 살아 푸른 잎, 끝끝내 살아낸 붉은 마음 어우러져 피었다 북풍한설 서리 내려 무덤을 덮고 죽은 듯 산 듯 허깨비처럼 걸어 얼음장 밑 흙살에 가 박힌다 한 줌 제비꽃 피워 올릴 뿌리 하나.... *시집/ 나리꽃이 내게 이르기를/ 천년의시작 리영희 - 정기복 먹먹한 허공에서 눈이 내렸다 전조등에 비친 눈발은 불쑥 튀어 오르는 튀밥인 양 눈부시다 어둠이 천천히 물러나며 길과 길 아닌 것의 경계가 위태롭게 그려졌다 바람 몰아치며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