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除夜) - 전영관 달력 마지막 장을 넘겼다 백지일 텐데도 뒷면을 보는 감정은 미련의 합병증 바퀴에 깔려 죽은 새는 스스로 결정한 포기의 결과인지 바퀴쯤 피할 수 있다는 자만의 파탄인지 한 해의 취사선택을 복기했다 달력의 칸은 단정해 보이지만 달걀가리일 뿐 희망을 허망으로 오독했다 내일은 버겁더라도 내 일이다 어쩌다 술자리의 계산대 앞에 선 것처럼 마지막엔 농담 같은 혼자였다 우뇌는 괴사하고 살아남은 좌뇌 하나로 버티느라 치사량의 현기증을 혼자 앓았다 다들 당하는데도 희망이나 다짐 따위의 면식범들만 활개쳤다 피 묻은 잇바디를 드러내며 배회했다 제야가 그들의 대목인 것이다 불신하지만 다들 구매하니까 행복이란 사은품을 붙여놓은 맘대로 며칠씩 지우고 잠적해도 되는 일인용 달력을 들여놓았다 숫자는 힘도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