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봄날 입하 - 이문재

봄날 입하 - 이문재 초록이 번창하고 있다. 초록이 초록에게 번져 초록이 초록에게 지는 것이다. 입하(立夏)다. 늦은 봄이 넌지시 초여름의 안쪽으로 한 발 들여놓는 것이 아니다. 여름이 우뚝 서는 것이다. 아니다. 늦어도 많이 늦은 떠났어도 벌써 떠났어야 하는 늦은 봄이 모르는 척 여름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제대로 죽어야 죽는다. 죽은 것은 언제나 죽어 있어야 죽음이다. 죽어서 죽는 것이 기적이다. 초록에서 초록으로 이별이 발생한다. 이토록 신랄하고 적나라하지 않다면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오늘 여기 입하 지금 여기 이렇게 눈부시다.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달밤 - 이문재 은어떼 올라온다는데 열나흘 달빛이 물길 열어준다는데 누가 제 키보다 큰 투망을 메고 불어나는 강가에..

한줄 詩 2018.05.24

논둑에서 - 남덕현

논둑에서 - 남덕현 저승인 듯 찔레향 아득하여라 논마다 물 그득하고 논개구리 하염없이 운다 논둑에 앉아 서럽게 따라 읊는 아버지 생전 한 말씀 애비야 봄이란 게 와도 슬프고 가도 슬프구나 *시집/ 유랑/ 노마드북스 여름 - 남덕현 나는 찔레가시에 배를 찔려 절명한 새끼손가락 한 마디도 못 되는 애벌레 생각에 잠 못 들기도 하는 것이다 하천가 갈댓잎에 앉아 몸 말리던 개구리 행여 잠들어 염천 볕에 타 죽지나 않았을까 공연한 걱정에 심란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필 만우절에 태어난 강아지 거짓말처럼 싸늘하게 콧바람이 식을까 하루에 열두 번을 들여다보고도 전전긍긍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나만 두고 다시 봄이 떠나버리면 나는 그렇게도 서러운 것이다 떠나기에는 내년 봄이 더 좋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여름이 서러운 ..

한줄 詩 201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