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논둑에서 - 남덕현

마루안 2018. 5. 22. 21:51

 

 

논둑에서 - 남덕현

 

 

저승인 듯

찔레향 아득하여라

 

논마다 물 그득하고

논개구리 하염없이 운다

 

논둑에 앉아

서럽게 따라 읊는

아버지 생전 한 말씀

 

애비야

봄이란 게

 

와도 슬프고

가도 슬프구나

 

 

*시집/ 유랑/ 노마드북스

 

 

 

 

 

 

여름 - 남덕현

 

 

나는

 

찔레가시에 배를 찔려 절명한

새끼손가락 한 마디도 못 되는

애벌레 생각에

잠 못 들기도 하는 것이다

 

하천가 갈댓잎에 앉아 몸 말리던 개구리

행여 잠들어

염천 볕에 타 죽지나 않았을까

공연한 걱정에 심란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필 만우절에 태어난 강아지

거짓말처럼 싸늘하게 콧바람이 식을까

하루에 열두 번을 들여다보고도

전전긍긍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나만 두고 다시 봄이 떠나버리면

나는 그렇게도 서러운 것이다

떠나기에는 내년 봄이 더 좋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여름이 서러운 것이다

 

 

 

 

# 남덕현 시인은 1966년 대전 출생으로 대전 보문고 및 서강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산문집 <충청도의 힘>, <슬픔을 권함>이 있고 <유랑>이 첫 시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땅끝에서 부르는 노래 - 임동확  (0) 2018.05.22
토토의 달력 - 현택훈  (0) 2018.05.22
나는 甲이다 - 김장호  (0) 2018.05.22
첼로가 있는 밤의 시제 - 한석호  (0) 2018.05.21
묵호를 지날 때 - 정일남  (0) 2018.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