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땅끝에서 부르는 노래 - 임동확

마루안 2018. 5. 22. 22:25



땅끝에서 부르는 노래 - 임동확



넌 낱낱이면서 하나인, 하나이면서 낱낱인 외로움이 전부인 수평선
네가 생각날 때면 난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난 땅끝에서 서성거리고
넌 애써 태연을 가장한 은빛 물결로 반짝이며 저 바다 멀리 머물러 있다
영원히 키가 자라지 않는 아이처럼, 아니면 길두항에 묶여 있는 낡은 한 척의 어선처럼.


문득 역광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오후 네 시의 바다, 백리향이 피어난다
서로 의지하거나 때로 싸우며 무성해 가는 사스레피나무 아래로 네 숨결이 실려 온다
그러나 난 자꾸만 해벽에 미끄러져 내리는 흰 파도처럼 끝내 다가갈수 없어
그새 깊고 아득해진 바다 위에 정박한 섬처럼 떠도는 시간들을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거기 들어서는 순간, 무엇이든 삼킬 기세의 폭풍 같은 고요의 심연에 닻을 내린 채
다가갈수록 물러나는 너와 나 사이, 결코 좁힐 수 없는 거리만큼 아득하고
비장한 각오도 없이 네가 남긴 유일한 흔적인 순수한 기억을 덜컥 움켜쥔 채


너를 찾을 때만 동백 잎처럼 반짝이는 내 두 눈이 언제나 그곳에 서 있었거나,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아니면 앞으로도 오래 거기 남아 있을 너를 부른다.



*시집,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문학수첩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 임동확



네가 깊고 푸른 심연의 난간에 그나마 성한 영혼의 한발을 걸친 채 그믐달처럼 매달려 있을 때


내가 사랑한 건 결국 너의 전부가 아닌, 행여 저조차 끝없이 못 믿어 온 한낱 난파선 같은 나의 의지


기껏해야 벌써 싸늘해진 기억의 선체를 인양(引揚)하는 일만이 오롯이 너의 몫으로 남아 있을 때


내가 가진 것이라곤 널 최후의 순간까지 지탱해 줬을 법한 수평선마저 탕진해 버린 시간의 잔해들


그만 네가 신촌 사거리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연신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통곡하고 있었을 때


내가 확신하는 것이라곤 반향 없는 메아리처럼 사라진 너의 뒷등을 오롯이 기억하며 겨우 여기 살아 노래하며 기도하고 있을 뿐


정작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간절하게 부르며 거대한 수압 같은 고독과 마주하고 있었을 때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지 않을 것들 - 김왕노  (0) 2018.05.23
하얀 민들레 - 김선  (0) 2018.05.23
토토의 달력 - 현택훈  (0) 2018.05.22
논둑에서 - 남덕현  (0) 2018.05.22
나는 甲이다 - 김장호  (0) 201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