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나를 버린다 - 윤제림
친구는 어디 두고 혼자 오느냐고
여관집 주인이 물으면 나는
네가 저 철쭉동산을 넘어가더라고 말하거나,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새 숙소를 마련했다고
아름답게 말하지 않을란다.
그보다는, 어느 겨울 새벽 유곽에서처럼
네 이름 뒤에 욕지거리나 보탤란다
금방 함께 있었는데 말도 없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한두 번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일란다
토함산 일출을 보러 갔을 때도 그랬고,
해인사 가서도 그랬다고,
제 버릇 개 주겠느냐고
가래침을 뱉을란다.
조금 더 보고 가자
하룻밤 더 묵고 가자 발을 씻는 걸 보고도,
더 볼 것 없다며
다른 데로 가자며 양말도 두고 속옷도 두고
사라져가던 친구여.
내 이제 너하곤
다시는 어디 같이 안 간다.
내 죽어도,
너 죽었어도!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 문학동네
사람의 저녁 - 윤제림
내가 가도 되는데
그가 간다.
그가 남아도 되는데
내가
남았다.
# 이 시를 읽을 때면 10년 전에 떠난 사람이 불쑥 떠올라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밥값을 제대로 했던 사람은 먼저 떠나고 밥값 못 하는 나는 살아서 밥을 축낸다. 인생이 길어서 슬픈 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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