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지 않을 것들 - 김왕노

마루안 2018. 5. 23. 19:53



오지 않을 것들 - 김왕노



저 뻥 뚫린 길을 종일 바라보아도
어디서 잡혀 있는지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고
버드나무 꽃가루만 날린다
저무는 것들의 바스락 소리 길 건너서 오고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데
나만큼 쓸쓸한 기다림이 강 건너 등불로 피어난다
산다는 것은 기다림을 밥그릇같이 닦아
날마다 부엌 찬장에 포개어놓는 것
기다림에 밥을 푸고
기다림에 국을 담아
혼자서라도 밥을 먹으며 견디는 것
그리고 또 기다림을 하얗게 설거지해두는 것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데
저 길이 저문다 해도
기다림을 어둠 속에 세워두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로수에 꽃 등불같이 피우며
올 것은 밤새 이리로 터벅이면서라도 오고 있을 테고
나는 저문 길가의 별 아래서
또 몇 잔의 소주를 청춘같이 잔 가득 부어 마실 것이다



*시집, 말달리자 아버지, 천년의시작








수국 꽃 수의 - 김왕노


큰형 동생네 식구 우리 식구가 모여
어머니 수의를
좋은 삼베로 미리 장만하자 상의하였다.
다소 시적인 어머니 그 말씀 듣고는
그 마음 다 알지만
세상이 다 수읜데 그럴 필요 없단다.
아침에 새소리가 수의였고
어젯밤 아버지가 다녀가신 어머니 꿈이 수의였고
그까짓 죽은 몸이 입고 가는 옷 한 벌보다
헐벗은 마음이 곱게 입고 가는
세상의 아름다운 기억 한 벌이
세상 그 어떤 수의보다 좋은 수의라며
여유가 있다면 마당에 꽃이나 더 심으라 하셨다.
그 말씀 후 철마다 여름 마당에 수국 꽃 환한 수의가
어머니 잠든 머리 곁에 곱게 놓여 있다.



*시집, 그리운 파란만장,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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