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아직도 한 뼘이나 남은 꿈 - 김이하

아직도 한 뼘이나 남은 꿈 - 김이하 동트기 전에 일어나 서둘러 밥 지어 먹고 아침 햇살에 눈 비비며 나갔다 어스름 저녁에 들어서는 집은 썰렁하다 한 등의 불꽃이 비치면 썰렁하던 집도 이내 환한 궁전이다, 저녁은 곰취 쌈 하나로도 만찬이고 돌나물, 달래 무침 한 그릇으로도 그럴싸한 맛이다 달콤하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은 길 이렇게 살지 말라고,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떠났던 길 무엇이 되고, 무엇이 되어 쓸쓸한 길 팍팍하게 가다가 다 접고 돌아온 길이 이제는 더 훤히 잘 보이고 눈 감아도 무장 꿈이 그려지는 길이다 그래 한 뼘이나 더 남은 햇살을 붙들고 씨감자를 심었던 저녁이다 *시집, 눈물에 금이 갔다, 도서출판 도화 집 밖에서 - 김이하 두부 한 모, 담배 한 갑 사려고 길을 나서 수퍼에 가는 일요일..

한줄 詩 2018.05.21

아버지의 집 - 홍성식

아버지의 집 - 홍성식 겨우겨우 육십 년을 견뎌준 거미줄 같았던 엄마의 혈관이 머릿속에서 끊어지던 그날 이후 곰팡내 나는 시골집 안방에 언제나 어렵기만 한 아버지와 마주 앉는 일이 잦았다 경보음 높인 구급차에 두려운 낯빛의 아내를 실어보낸 뒤 적었던 그의 말수는 더 줄어들고 가난의 먼지 애써 닦아내던 엄마의 툇마루에 걸터앉은 아버지는 위태롭다 하지만 어찌 잊을까 네 개의 방마다 그득그득 동생과 자식들로 넘쳐나던 때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그네들의 늦잠을 채근하던 날들을 검버섯 가득한 그의 손이 다독이는 건 떠나고, 떠나서는 돌아올 줄 모르는 사람들 내일이면 다시 도시로 향할 서툴게 차린 막내아들의 밥상 늙은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 떨어져도 이미 식은 국 여전히 차갑고 누렁이 한 마리 짖지 않는 아버지의 집 ..

한줄 詩 2018.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