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 육근상 강물이 무명의 종이처럼 버드나무 가지 매달린 헝겊처럼 칼빛으로 출렁거린다 지난겨울에는 물결 소리 견디지 못한 강물 다 얼어붙었다 며칠 전에는 매바위 넘던 노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머릿수건 고이 풀어놓고 물살 건너갔다 산작약은 또 무슨 억울한 사정 있어 싸락비 불러내어 이마 쿵쿵 찧고 있는가 봉분 옆으로 양단 마름이나 끊어다 입힌 듯 할미꽃 고개 끄덕인다 나는 아버지가 매어놓은 뱃머리 마을 살면서 달빛이며 꿩이며 풀잎의 서러운 얘기 다 들어주었다 오늘 밤에는 강물이 남은 신에 다 털어놓는 듯 너울너울 흘러간다 *시집/ 여우/ 솔출판사 이 몸이여 홀로 살아가는구나* - 육근상 나는 이제 빨랫줄에 해지고 구멍 난 셔츠로 걸려 있다 바람 들락거리기 좋았으니 풀 먹은 베옷처럼 얼어 앙상한 갈비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