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박쥐 - 김남권 나는 나쁜 피를 빨아 먹는 박쥐다 어둠을 밥보다 좋아하고 어둠 속 불빛의 길에서 하이에나처럼 바람의 통로를 따라 움직인다 머물 곳이 없어 평생을 거꾸로 매달려 잠자리에 들고 거꾸로 매달려 눈을 씻었다 동굴보다 깊은 어둠 속에서 오직 허공을 날아오는 하나의 주파수만 찾았다 시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가슴속의 파동을 기억하는 그 사람의 등 뒤에 숨어서 숨소리만 들었다 솜털이 일어서는 오감을 열어놓고도 한 번도 그립다는 말을 못했다 반백 년을 넘게 비워논 하늘 아래서 한겨울에도 지지 않는 하얀 민들레꽃 한 송이로 피어나 서러운 눈물조차 삼켜야 했다 눈보라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동면에 들기 전, 심장이 잠시 멈추는 법을 배우고 옛사랑의 그림자를 베어 하얗게 솟구치는 그 피를 마시고 어둠 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