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삶은 그렇게 완성되리라 - 권순학

마루안 2022. 3. 16. 21:37

 

 

삶은 그렇게 완성되리라 - 권순학

 

 

아직

청춘이지만

 

퍽 소리 한번 질러본 적 없는

화장 한번 한 적 없는

그러나 어처구니없이 가려는 이를 위해

떠나보내는 자들이

흔들리지 말라고

잊지 말자고

눈물 젖은 꽃으로 약속을 한다

 

술은 적이고 동지지만

제사 술은 술이 아니라며

함께 제를 지내자던 이를 위해 잔을 올린다

 

부고보다 더 빨리 달려온 부슬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남은 체온으로 불 당겨지고

시간은 굽어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삶은 그렇게 완성되리라

 

 

*시집/ 너의 안녕부터 묻는다/ 문학의전당

 

 

 

 

 

 

이명(耳鳴) - 권순학

 

 

자물쇠 하나 고장이 났다

 

종종 찾아오는 이명(耳鳴)

새가 집을 지었나 보다

 

새의 전생은 분명 나무였을 게다

뿌리박고 오르다 더 오르지 못하던 어느 날

날기를 결심하였을 때

솟지 않는 용기를 굴뚝에 부추겼을 게고

커질 대로 커진 불균형이지만

지워지지 않은 본능은

바람이 밀 때마다 기우뚱거렸을 것이다

계절을 접어 만든 날개지만

날면 안 된다는 것 알았을 때

바람 따라 훨훨 날아

귓속 어딘가에 묻어두었을 게다

 

뿌리까지 흔들리던 어느 날 벌어진 틈으로

그 소리 새어 나오는 걸 거다

 

열쇠는 반짝이고 있지만

새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 권순학 시인은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공업대에서 시스템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탕화면>, <오래된 오늘>, <너의 안녕부터 묻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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