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셋 중 하나 - 이현승

마루안 2022. 3. 14. 22:13

 

 

셋 중 하나 - 이현승

 

 

세상에 부모는 세 종류뿐이다.

서툰 부모,

어리석은 부모,

나쁜 부모.

 

팔이 부러진 신(神)은

놀라서 울고, 아프고, 잠들고, 소스라친다.

 

아픔을 보는 것만으로

몇 배는 더 아플 수 있지만

결국 대신 아플 수는 없으며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자기를 책망하고 힐난하는 것밖에 없다.

 

불행을 믿고,

불안에 의지하며,

행운을 간구할 수밖에 없는

쓸쓸한 신앙인일 수밖에 없다.

팔에 붕대를 감은 신은 깨어나

롤리팝을 핥으며

세상을 다 가진 미소로 화답하기까지는.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 문학동네

 

 

 

 

 

 

죄인 - 이현승

 

 

회귀란 너무 멀리 떠나왔다고 자각한 자의 것일까

회심은 늘 그 자리에서 멈춘다.

돌아갈 수 없는 자에게

떠나온 자리는 책망의 자리다.

 

건물을 통째로 집어삼킨 화염이 시작된 곳,

망자와 나눴던 마지막 악수가 선연한 손바닥.

너 같은 인간은 다시는 안 본다고 돌아선 사람의

우물에 탄 독 같은 말이 퍼렇게 떠오르는 귀 우물.

 

도둑은 이미 다녀갔는데,

자물쇠를 몇 겹으로 잠가놓고도

문밖의 소리에 온 귀를 다 기울이는 집주인처럼

 

모든 가능성을 다 비워놓고도 집은

금세 우울한 공기로 가득찬다.

진정으로 포기를 모르는 것은 실패이다.

실패를 감았다 풀듯

실패를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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