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연대기 - 육근상

마루안 2022. 3. 20. 19:54

 

 

연대기 - 육근상

 

 

강물이 무명의 종이처럼

버드나무 가지 매달린 헝겊처럼

칼빛으로 출렁거린다

 

지난겨울에는 물결 소리 견디지 못한 강물 다 얼어붙었다

며칠 전에는 매바위 넘던 노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머릿수건 고이 풀어놓고 물살 건너갔다

산작약은 또 무슨 억울한 사정 있어 싸락비 불러내어 이마 쿵쿵 찧고 있는가

봉분 옆으로 양단 마름이나 끊어다 입힌 듯 할미꽃 고개 끄덕인다

 

나는 아버지가 매어놓은 뱃머리 마을 살면서

달빛이며 꿩이며 풀잎의 서러운 얘기 다 들어주었다

오늘 밤에는 강물이 남은 신에 다 털어놓는 듯 너울너울 흘러간다

 

 

*시집/ 여우/ 솔출판사

 

 

 

 

 

 

이 몸이여 홀로 살아가는구나* - 육근상



나는 이제 빨랫줄에 해지고 구멍 난 셔츠로 걸려 있다
바람 들락거리기 좋았으니 풀 먹은 베옷처럼 얼어
앙상한 갈비뼈 자리 훤히 들여다보이는구나
이장하는 목사공파 7세조 유골처럼 고스란하구나
할아버지도 손 닿지 않는 등허리 쪽 가려웠으리라
친정 간 각시처럼 할머니 계시지 않아
오동나무 둥치 기대 긁적이고 있었으리라
이 몸 벗어 걸쳐두고 며칠 술잔 속 세상 떠돌다 돌아와
맨몸 다 드러낸 푸댓자루로 널브러져 술 몸살 앓다
솜눈이 푹푹 쌓일 것 같은 산초나무 바라보니
저이도 며칠 어디를 다녀왔는지 찬물 들이켜는 신음소리로 스러진다

 

 

*고려가요 <동동>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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