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공중에 새들이 가득한 날 - 박지영

마루안 2022. 3. 14. 22:28

 

 

공중에 새들이 가득한 날 - 박지영

 

 

지친 노동에 하루 치가 뭉그러진 곳에는 당신이 있습니다. 맨드라미, 민들레, 나비, 종달새에 이르기까지 햇빛 쨍한 날 찾아가는 친정집 향한 풀섶 위에 발등을 가르는 바람 소리로 솔깃하던 당신, 태풍 소식에 대목장도 서럽고 동동거리는 마음에 빈궁한 장바구니를 뒤로 감추며 남은 아이 둘 데리고 도끼비시장을 배회하다 보면 도래지를 잃은 도래지를 잃은 날갯짓이 공중에 가득합니다

 

 

*시집/ 돼지고물상 집 큰딸/ 실천문학사

 

 

 

 

 

 

아버지의 하루 - 박지영

 

 

마지막 넝마주이가 집을 나서면 그 시끄럽던 마당도 30촉 전구 하나만 흐릿하게 남는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낮에 들어온 이웃집 송사의 무임 대소서 일을 시작했다

 

불 끄라는 엄마의 통박에 아버지가 하시던 말은 '이거라도 해야 우리 먹고사는 일에 민원이 없는기라' 하고서 돌아앉아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새벽까지 한숨 소리가 이불깃을 걸어 다녔고 빛도 들지 않는 가난한 동네에 전이된 슬픔의 공명이 겨울 강에 새들을 불러오듯이 불편함은 동네 사람들의 가슴 밑을 흘러가고 있었다

 

 

 

 

*시인의 말

 

때(時)에 이르러 시(詩)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그대로 보이는 빈 마음에 투영된 사물에 잇닿은 마음이었다. 이러한 마음은 장자의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부린다'라는 말과도 상통할 수 있겠다. 부모님과 큰딸의 소천으로 삶에 구속되지 않음을 배웠으니 흐르는 물에 떠 있으면서도 젖지 않는 달처럼 빛을 옮기는 허공에 매임 없는 자유로움을 얻은 묵은 업장과도 상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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