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볼륨 - 김승종

마루안 2022. 3. 15. 21:52

 

 

볼륨 - 김승종

 

 

몰래 화장하고 부드럽게 떼를 써도

삶은 한정된 볼륨

누구나 위대한 말씀 따라 레버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하지만

 

익숙해져 풀 죽었다가 이마저 낯설어져

또 꿈꾸려 하고

흰 머리칼 버리기를 우리는 꺼리는지 몰라

 

오늘은 볼륨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그대로 들으며

만취한 꿈속 쓸쓸한 루주 칠한 몸 깨워

자기 앞의 삶

그 시작과 끝을 이제 한번 노닐어 보자

 

사라져 가네 뭉클한 것

화살인가 활인가 과녁인가

 

아니라면 그게 무엇인가 우리인가

볼륨을 높이고 숨겨 둔 춤을 춰 보아야 하나

 

소식 준 옛 친구여 그대 오늘은 유죄다

그것을 알아내기를

오토산(五土山)을 그리워하는 견자(見者)들에게 먼저 알리고

우리 젊은 날에도 회수(回首)의 편지를 쓰기를

 

구태여 그 끝에 '이제 안녕히'라고 쓰든 말든

어떤 어조이든 그것은 오로지 그대의 몫 그대의 볼륨

 

 

*시집/ 푸른 피 새는 심장/ 파란출판

 

 

 

 

 

 

아롱다롱 - 김승종


취한 스물한 살에 취한 오토바이에 치이자마자
맞은 고희
가부좌한 새벽
지난 세월이 폐사의 종소리처럼 선회하지만
돌아간 부모가 숨기던 애끊기던 모습
떠나간 애인이 쥐여 준 붉은 점 스카프
찾아온 남매의 염색한 검은 머리에 눈물 흘리네
스물한 살 이후 그는 울지 않았다
세상이 성기 끝에 매달린 오줌 방울 같고
표정 없는 자기 그림자가 너무 옅어서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봄날부터
불편한 다리 끌며 겨우
도와 왔지 자신보다 어려운 속리산 요양병원 이웃을
취한 스물한 살에 취한 오토바이를 치자 말자
맞은 고희
가부좌한 새벽
그가 운다 천지현현(天地玄玄) 미명에
우는 눈에 어리는 미소
불에 타고 불에 타 재가 되고
그 재가 다시 재가 된 사리 같은 검불
웃는 그가 우는 그를
우는 그가 웃는 그를 보고 있네

 

 

 

 

# 김승종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머리가 또 가렵다>, <푸른 피 새는 심장>이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은 그렇게 완성되리라 - 권순학  (0) 2022.03.16
무허가 건축 - 최백규  (0) 2022.03.15
공중에 새들이 가득한 날 - 박지영  (0) 2022.03.14
셋 중 하나 - 이현승  (0) 2022.03.14
저 공장의 불빛 - 이우근  (0) 202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