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당신 또한 천사들의 장난감을 가졌지 - 김륭

마루안 2022. 3. 16. 21:45

 

 

당신 또한 천사들의 장난감을 가졌지 - 김륭

 

 

다른 사람을 가지고 싶은 마음
몸 밖으로만 떠돌다 입이 지워진 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러나 언제나 늙은 고아 같아서

아프다는 말은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라고
쓴다, 가만히 물을 두 뺨에 대 보는
돌멩이처럼

얼마나 더 울어야 보일까?
몸에 없던 구멍이 생겼다 개가 드나드는 개구멍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꺼내거나 사람이 사람 속으로
숨어드는 구멍, 천사들이 날개를 말리거나 장난감을
갖다 놓아 아직 그 누구도 찾지 못한
구멍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어머니 두 뺨에도

스르르 나타나기도 하는 구멍에 눈이 멀고

귀가 먼 나는, 그런 내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당신 또한 옛날 영화 속으로 돌아가서는

오래된 미래가 됩니다 다시

기다려야 됩니다

 

아주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나이가 아홉 살이다

내 몸인데 틀림없는데 내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세상에, 세상에는 나보다 더 재미있는 것도

나보다 더 재미없는 것도

없다, 나는

 

물을 가지고 노는 돌멩이처럼

기다린다 죽은 듯 가만히 앉아서

날개가 돋아나기를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 일요일

 

 

 

 

 

 

옛날 영화 - 김륭

 

 

같이 영화 볼 사람을 찾았다

 

사람이 없으면 나무라도 좋고, 라며

언젠가 팝콘 상자 속에 손을 넣어 주고 사라진

네가 웃었다

 

비파, 고욤, 돌배, 오리, 자귀, 바오밥, 아카시아나무.....

근데 그때 우리가 본 영화 속에 서 있던 나무는

무슨 나무였더라?

 

다 지나간 이야기지 뭐

둘이서 우는 것보다 혼자 웃는 게 더 아파서

 

팝콘부터 캐러멜에서 핫 칠리로 바꾸고

나는 새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까르르 네가 또 웃었다

새마을운동 하냐?

 

옛날과 영화가 손을 잡고 날 구경하러 왔다

 

위리안치(圍籬安置)

 

너는 모르는 사람이 틀림없다고

노랗게 익은 탱자를 매달고 한 번 더 웃었다

 

겨울이었다 참새들이 소복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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