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또한 천사들의 장난감을 가졌지 - 김륭
다른 사람을 가지고 싶은 마음
몸 밖으로만 떠돌다 입이 지워진 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러나 언제나 늙은 고아 같아서
아프다는 말은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라고
쓴다, 가만히 물을 두 뺨에 대 보는
돌멩이처럼
얼마나 더 울어야 보일까?
몸에 없던 구멍이 생겼다 개가 드나드는 개구멍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꺼내거나 사람이 사람 속으로
숨어드는 구멍, 천사들이 날개를 말리거나 장난감을
갖다 놓아 아직 그 누구도 찾지 못한
구멍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어머니 두 뺨에도
스르르 나타나기도 하는 구멍에 눈이 멀고
귀가 먼 나는, 그런 내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당신 또한 옛날 영화 속으로 돌아가서는
오래된 미래가 됩니다 다시
기다려야 됩니다
아주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나이가 아홉 살이다
내 몸인데 틀림없는데 내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세상에, 세상에는 나보다 더 재미있는 것도
나보다 더 재미없는 것도
없다, 나는
물을 가지고 노는 돌멩이처럼
기다린다 죽은 듯 가만히 앉아서
날개가 돋아나기를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 일요일
옛날 영화 - 김륭
같이 영화 볼 사람을 찾았다
사람이 없으면 나무라도 좋고, 라며
언젠가 팝콘 상자 속에 손을 넣어 주고 사라진
네가 웃었다
비파, 고욤, 돌배, 오리, 자귀, 바오밥, 아카시아나무.....
근데 그때 우리가 본 영화 속에 서 있던 나무는
무슨 나무였더라?
다 지나간 이야기지 뭐
둘이서 우는 것보다 혼자 웃는 게 더 아파서
팝콘부터 캐러멜에서 핫 칠리로 바꾸고
나는 새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까르르 네가 또 웃었다
새마을운동 하냐?
옛날과 영화가 손을 잡고 날 구경하러 왔다
위리안치(圍籬安置)
너는 모르는 사람이 틀림없다고
노랗게 익은 탱자를 매달고 한 번 더 웃었다
겨울이었다 참새들이 소복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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