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곽재구

마루안 2019. 2. 8. 19:48

 

 

 

설 연휴가 끝나고 여행 배낭에서 꺼낸 이 책의 귀퉁이가 약간 닳았다. 시집 하나와 함께 이 책은 연휴 여행길에 동행을 했다.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하는 배낭에 들어가기에는 다소 두꺼운 책이지만 나도 모르게 손길이 갔고 꽉 찬 배낭 귀퉁이에 밀어 넣었다.

이 책은 新 포구 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렸듯이 곽재구의 포구 기행은 오래전에 나온 적이 있다. 한 15년쯤 됐나? 그때 읽었던 포구 기행은 낯선 포구의 쓸쓸한 풍경이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긴 여운이 남았다. 마치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한편 이 시인은 시보다 잡문으로 너무 독자를 울궈먹는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 책은 쓸쓸함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 많이 변해버린 풍경 탓이 가장 크지만 문장도 에전처럼 쓸쓸하지가 않았다. 어쩌면 요즘의 책 읽는 세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영화도 난무하는 폭력에다 온갖 욕설과 웃겨야만 흥행을 하고 조금만 내용이 진지하면 흥행과는 멀어진다.

예술의 가벼운 경향은 출판에도 예외가 없다. 조금 두껍고 문장이 길면 독자의 외면을 받는다. 시인의 문장도 힘을 많이 잃었다. 명시 사평역에서 행간에 흐르던 쓸쓸함은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또 다른 기행문인 내가 사랑한 세상 내가 사랑한 사람은 또 어떤가. 그래도 여전히 세상 보는 눈이 따뜻하고 사람을 우선하는 정신은 그대로다.

그럼 아직도 스무 살 청년처럼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는 시인은 몇 살일까. 본문에 나오는 여행지에서 만난 동갑내기 어부에 관한 글에서 갑오년 말띠란다. 요즘 이런 식으로 나이 말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할지 모르나 시인은 이렇게 표현을 했다. 시인은 1954년 가을에 태어났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정태춘도 같은 갑오년 말띠다.

책 내용과는 무관하게 풍경의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아쉬움은 크다. 작년 전북 김제 심포항을 갔을 때 온통 시멘트로 바른 회색 포구와 거대한 주자창 주변이 우주정거장처럼 삭막하게 느껴졌다. 20년 전에 내가 왔던 곳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끈끈한 삶의 생명력이 사라진 포구는 죽은 곳이다. 갯벌이 아득하게 펼쳐져있던 포구는 사라지고 요트와 낚싯배 아래로 시멘트 벽에 찰랑대는 파도도 힘을 잃었다. 나는 왜 포구는 갯벌과 그물 실은 고깃배와 손가락 두꺼운 어부가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걸까.

예전의 포구 기행이 그리운 것도 그런 이유다. 그때의 포구 기행은 후지와라 신야의 기행문처럼 낯선 삶에서 공유하고 싶은 쓸쓸함과 애잔한 삶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아쉬움은 새로운 위로를 생각해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아직은 이런 여행 방식도 괜찮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