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나는 나다 - 정민

마루안 2019. 1. 26. 22:39

 

 

 

한시는 잘 안 읽다가 요즘 들어 자주 손에 잡는다. 분명 우리 조상이 쓴 시인데도 중국 문자로 썼다는 이유 때문에 기피했는데 그보다 한문 실력이 형편 없기에 누군가 번역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맛을 못 느낀 탓이 클 것이다. 예전에 어려운 한자를 해독하기 위해 자전 펴놓고 한 줄씩 읽던 시절도 있었건만 세월은 이렇게 게으름만 쌓이게 했다.

이 책은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제목에 낚였다가 함럄 미달의 허술한 내용을 알고는 도로 내려 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제목으로 배신은 하지 않았다. 저자의 빼어난 해석 능력과 현대적인 한글로 잘 번역을 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대부분의 인물들이 다른 책에서 많이 다룬 문장가들이라는 거다.

허균, 이용휴, 성대중, 이언진,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등, 여덟 명의 글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 이용휴와 이언진의 글을 관심 있게 읽었다. 책 제목 <나는 나다>는 이용휴가 신득령이라는 사람을 위해 지은 작품인 <還我箴 환아잠>에서 따왔다.

이용휴는 얼마전에 읽었던 <문장의 품격>에서 확 빠져든 작가다. 묵혀있는 고전을 이렇게 끄집어 내어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작업이 많았으면 한다. 세익스피어만 국보급의 위대한 작가던가. 우리에게도 좋은 문장가들이 많다.

이언진은 이용휴의 제자다. 당연 스승인 이용휴보다 32년 늦게 태어났지만 20대 중반에 요절을 하는 바람에 스승인 이용휴가 환갑을 앞둔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다. 이용휴는 제자의 재능을 요즘으로 치면 넘사벽이라 칭송했다. <그는 세상에 알려짐을 구하지 않았다. 알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을 이길 마음도 없었다. 족히 이길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을 인정하는데 인색했던 이용휴가 입이 마르게 칭송했던 이언진은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유성처럼 사라진 천재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이렇게 불꽃처럼 살다가 일찍 사라진 사람에게 관심이 간다. 중인 계급인 이언진의 시를 여러 번 읽은 이유다.

문장가는 그의 재능을 질시했고 일반인은 그를 잘 몰랐으나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일본 문장가들이 그의 재능을 알고 탄복한다. 병약했던 이언진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듯 스물 여섯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원고를 아궁이에 불살랐으나 그의 아내가 막아서 타고 남은 작품이 전해오고 있다. 인생은 짦고 예술은 길다는 속담이 바로 그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