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백석 평전 - 안도현

내가 백석 시인을 알게 된 것이 언제였더라. 아마도 1990년도 중반이었을 것이다. 윤동주와 김소월 정도만 알다가 정지용과 백석이라는 시인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백석 시를 꼼꼼하게 읽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몇 편의 시만 읽다가 그의 시집이 묶여져 나오면서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다 시가 대중화 되지 않고 몇몇 모던 보이들의 전유물이던 시절 어쩌면 이렇게 현대적인 시를 썼을까 싶게 인상 깊었다. 서정주의 초기 시를 읽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이 평전을 읽으면서 다시 백석 시인을 생각하게 된다. 시인의 생애야 일반인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은 한다. 일부 시인은 특별함을 넘어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때론 짧고 불행했던 시인의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백석 시인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으..

네줄 冊 2018.08.08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 오도엽, 이현석

많은 아버지 중에 몸으로 익혀 배운 기술로 가족을 부양한 아버지는 더 위대하다. 여기에 기록한 아버지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세탁소, 대장간, 구둣방, 양복점, 시계공, 사진공, 전파사 등, 지금은 사라져가는 직업을 평생의 밥벌이로 삼은 사람들의 기록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 어떤 傳記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기록한 것이 아닌 시인이 묻혀있는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가슴으로 쓴 기록이기에 더욱 값진 책이다. 그래서 오도엽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가슴에 와닿는다. 많은 아버지들이 그랬듯 이 책에 언급된 아버지들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밥벌이에 나서야 했다.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니 번듯한 직장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기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보수도 받지 않고 그저 ..

네줄 冊 2018.08.03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 - 조광희

조광희 변호사의 산문집이다. 이 책을 쓴 조광희는 직업을 특정하기가 좀 애매하다. 현재는 변호사로 있으니 변호사라 호칭하는 게 맞지만 한때 그는 영화사 대표로도 있었다. 그가 영화사를 접고(망했다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변호사라는 근사한 직업으로 전직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법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법률을 전공한 사람은 대체로 보수적인데다 머리가 좋아선지 권력에 줄서기를 잘한다. 유난히 발달한 출세길에 대한 예민한 촉수는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데 탁월한 기능을 발휘한다. 기득권의 맛을 보기 위해 알아서 기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그러나 조광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그도 일반적인 부류의 법학도처럼 평범한(?) 길을 걸었다면 충분히 출세하고도 남았을 거다. 스스로 권력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손..

네줄 冊 2018.07.30

이 별에서의 이별 - 양수진

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을 읽었다. 이라는 아주 시적인 제목을 달고 있으나 다소 이색적인 직업인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젊은 여성이 쓴 책이다. 장례지도사는 흔히들 하는 말로 장의사다. 요즘의 세태가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고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장의사가 조금 전문화 되어 장례지도사로 불린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해도 장례지도사는 전문직이면서 드러내기를 꺼리는 직업이다. 세상에 꼭 필요한 직업이면서 거리감을 두고 싶어하는 직종 중 하나다. 책을 읽다 보면 죽음이란 과정을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막상 닥치면 장례 업체의 도움 없이 치르기란 불가능함을 알게 된다. 저자는 동덕여대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한 후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생사문화산업학과를 공부했다. 이런 과정이 ..

네줄 冊 2018.07.25

존엄한 죽음 - 최철주

존엄사에 관한 진지한 책이다. 저자인 최철주 선생은 아내와 딸을 암으로 잇따라 잃었다. 그후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웰 다잉 강의를 하기도 했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시한부 가족을 편안하게 보내준 경험을 잘 기술했다. 아들에게도 자신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보여주며 아내와 딸처럼 고통 없이 떠나고 싶은 실천 의지를 보였다. 나도 연명의료로 생명 연장을 할 생각이 없다. 이 단어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이 용어가 입에 붙지 않은 것도 그 이유다. 좀 더 짧고 쉬운 단어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누군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의식도 없는 사람에게 온갖 의료 장치로 생명을 연장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환자나 가족이나 소생 가망이 없다면 고통 없이 ..

네줄 冊 2018.07.23

고기로 태어나서 - 한승태

미증유의 삼복더위에 좋은 책을 읽은 뒤가 참 개운하다. 책 내용이 개운하다는 말은 아니다. 있지만 잘 안 보이는 분야를 스스로 뛰어들어 발로 쓴 르포가 생생하게 전달되어 불편함이 남는다. 그런대도 개운하다는 것은 이런 작가의 발굴이 반갑기 때문이다. 라는 이색적이고 섬뜻한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 잡는다. 몇 년전에 읽었던 전작이 밑바닥 노동에 관한 체험기로 나를 사로 잡았다. 당시 이런 책은 다시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글도 아주 잘 쓴다. 소설과 르포와 신문기사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췄다고 할까. 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의 출판사가 좋은 책을 많이 낸다. 같은 출판사라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드루킹 같은 구더기 생기는 곳이 있는 반면 좋은 책을 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이런 ..

네줄 冊 2018.07.19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 - 마이클 맥거

는 프루스트의 책을 비롯해 유사한 제목이 너무 많은 책이다. 경계가 다소 모호하지만 잠에 얽힌 에세이라면 적당하겠다. 먼저 저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쓴 마이클 맥거 Michael McGirr 는 호주 출신으로 20 년간 예수회에 몸담았고 7년간 신부로 봉직하다 지금은 성직자의 삶을 버리고 결혼을 해서 소설가와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때 지독한 수면무호흡 증상에다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 환자였다. 결국은 의사의 도움으로 코골이 방지 마스크를 쓰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는데 그때부터 잠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책이 잠과 관계된 세계문화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나도 잠시 불면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기에 유독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책의 내용은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

네줄 冊 2018.07.15

뜨거운 휴식 - 임성용

노동자 시인 임성용의 산문집이다. 그는 현재 화물트럭을 운전하고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로 공단에서부터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노동자로 살았다. 이 땅에서 학력도 배경도 없는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한 여정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보여준다고 할까. 책 내용은 산문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지만 그 경계가 모호해서 감동 연결이 끊기기도 하지만 시인의 뜨거운 삶을 이해하는데 문제 없다. 내가 이런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체험에서 나오는 글 만큼 진실된 것은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진 사람보다 흉터와 기름으로 얼룩진 두껍고 굵은 손가락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악수를 해 보면 가는 손가락을 가진 자의 입으로 하는 인생타령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알 수 있다. ..

네줄 冊 2018.07.12

어느 애주가의 고백 - 다니엘 슈라이버

아주 낭만적인 제목과는 달리 한 알콜중독자가 술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연을 기록한 책이다. 나도 술을 마시고 한때는 술 먹는 장소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찾아갈 정도로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좋은 자리에서 술 한 잔 나누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절주를 한다. 음주 횟수도 줄었지만 서너 잔 넘어가면 단호히 브레이크를 건다. 비교적 술에 관대한 우리나라는 알콜 천국이다. 술 마시기를 강요하는 것도 술 먹고 주정하는 것도 일종의 범죄다. 민폐를 넘어서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다.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내 면허를 취소 당하고 애궂은 다른 사람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술 중독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까지 영혼을 파괴한다. 이 책은 지독한 알콜중독..

네줄 冊 2018.07.08

사춘(思春) - 서상만 시집

사춘(思春)은 서상만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나는 얼마전부터 이 시인의 시에 흠뻑 빠졌다. 지나간 시집을 다시 들추며 시의 궤적을 따라 가기도 한다. 서상만 시인은 1941년 생이니 우리 나이로 78세다. 그냥 뭉뚱그려 팔순이라 해도 되겠다. 책 읽고 감상 쓰는 이곳에 굳이 시인의 나이를 들먹이는 이유는 굉장히 톡특한 이력 때문이다. 선생은 불혹을 넘긴 1982년에 등단했는데 그러고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롯데제과 부산지사장, 한일제관(주) 이사, 롯데칠성음료(주) 이사를 역임했고 은퇴 후에야 본격적인 시를 발표한다. 내가 처음 시인의 시집을 읽은 것은 천년의시작에서 나온 였다. 서상만 시인을 알고 있었다기보다 천년의시작이 괜찮은 시집을 발간하는 출판사였기 때문이다. 칠순의 나이..

네줄 冊 2018.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