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하이더 와라이치

마루안 2019. 2. 1. 22:07

 

 

 

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게 있다. 아마존에서 만든 거라는데 독자에게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문장을 적으라는 설문조사에는 대부분의 인용문이 책의 앞부분이었단다. 많은 독자들이 앞부분만 읽다가 책읽기를 그만 둔다는 것을 나타낸다.

드물지만 내 경우도 이럴 때가 있다. 까다롭게 책을 고르기에 잘못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기대를 갖고 책을 골랐다가 경어체 문장의 책은 목차만 읽거나 몇 페이지 읽다가 만다. 이상하게 나는 편지 외에는 경어체 문장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잘 사질 않는 것도 그 이유다. 글쓴이에 대한 기대를 갖고 주문했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경어체 문장에 실망감이 확 밀려오면서 그 사람의 다른 책까지 일체 안 읽게 된 경우도 있다. 나의 독서 편식은 이렇다.

이 책은 제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출판사에서는 머리 싸매고 생각한 끝에 결정한 제목이겠지만 너무 흔하고 상투적이다. 책의 내용이 아주 알차고 탄탄하기에 더욱 제목이 아쉽다. 저자는 파키스탄 출신의 미국 의사다. 의사이면서 문장력이 소설가 못지 않다. 지금도 그는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단다.

<통계와 역사에 문학과 과학이 버무려진 생의 마지막 풍경>이라는 긴 부제가 이 책의 내용을 잘 대변하고 있다. 번역을 잘 하기도 했으나 이 의사는 참 글을 문학적으로 쓴다. 그래서 500 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인데도 아주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호킹 지수는 멀찌감치 달아나고 흡인력 있는 문장이 마지막까지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든다. 거기다 의학과 과학 상식을 아주 쉽게 습득하게 만든다. 저자가 의사로 현장에서 경험한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아무리 친절해고 의사가 작성한 병상 기록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다. 이 사람은 아주 쉽게 경험담을 문장에 녹여냈다.

이 책은 글 재주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현재 환자를 돌보는데 연관을 지어 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문학적이다. 나는 왜 이런 글에 열광을 하는 것일까.

사람(환자)에 대한 연민이나 사랑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는 내용들도 깊게 배어있다.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 긴 법정 싸움을 했던 사례를 들면서 현재의 환자와 가족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좋은 책이 많이 읽혀졌으면 한다. 의사도 언젠가는 환자가 될 수 있다.

<의사들은 본인을 환자로 가정할 때 절대로 사망을 최악의 결과로 여기지 않는다. 압도적으로 많은 의사들이 삶의 길이보다 삶의 질을 훨씬 소중하게 여긴다. 본인이 위중한 상태에 빠질 경우 심폐소생술을 원하는 의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반영한다. 의사들은 본인이 환자라면 죽는 과정을 질질 끌기보다는 깔끔하게 사망하는 쪽을 택한다>. 마치 내 생각처럼 참 인상적인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