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우리말의 탄생 - 최경봉

마루안 2019. 1. 22. 21:22

 

 

 

며칠 전에 영화 말모이를 보고 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요즘 영어에 우리 말이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 아무리 언어란 게 생물과 같아서 시대와 함께 변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말을 이렇게 홀대하다가는 조만간 영어 발음을 표기하는 표시 문자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이 책은 참 소중하다. 프랑스와 중국이 자기 말이 영어에 오염되는 것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프랑스와 중국이 문화대국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언어란 그 나라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말이 미처 체계화 되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술했다. 이런 책이 다소 지루할 수 있는데 저자의 글솜씨 덕에 아주 흥미롭게 읽힌다. 내가 한국인이고 우리 말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게 한다.

먹고 살기 힘들고 안팎으로 나라가 혼란스럽고 일본의 핍박은 심한 20세기 초에 우리말 사전은 만들어졌다. 맞춤법은 물론이고 표준어, 띄어쓰기까지 정립이 안된 시기에 사전을 편찬하는 일이 어디 쉬웠겠는가.

나라가 어려울 때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사람들이 있었듯이 사전 편찬에도 수많은 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우리 말을 위해 눈물겨운 희생을 한 학자들 중 과연 몇이나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 한글 학자들의 희생이 아깝지 않게 밀려드는 영어에 오염되고 있는 우리 글을 지킬 필요가 있다. 흔히 방송에 나온 초청 인사들 중에 영어를 지나치게 섞여 쓰는 사람이 있다. 외국물을 먹었고 영어에 능통하고 지식인처럼 보이기 위해서 그럴까.

우리 말을 지킨 사람들도 지식인이었지만 우리 말을 훼손한는 사람도 지식인들이다. 북한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말 정책에 관해서는 북한이 남한보다 낫다. 가끔 북한의 순 우리말을 들으면 처음엔 다소 어색하지만 입에 올릴수록 아름답다.

순 우리말을 쓰면 촌스럽고 세계화 시대답게 영어를 절반 정도 섞어 써야 교양 있는 것인가. 요즘 국어 사전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 찾아 보면 금방 나오니 굳이 사전을 찾을 필요가 없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조선어 사전이 형성되기까지의 눈물 겨운 과정을 시대별로 기술하고 있다. 지금은 한글학회라 부르지만 당시 조선어학회의 활동이 특히 소중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온갖 핍박을 받으며 오직 우리말을 모으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

읽으면서 많은 한글 학자들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이 책의 저자인 최경봉 선생 또한 기억해야 할 학자다. 지구상에 자기 말 없는 민족이 얼마나 많은가. 영어 잘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좋은 책 읽고 우리말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