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달달한 쓴맛 - 안성덕 시집

마루안 2019. 2. 11. 19:38

 

 

 

<달달한 쓴맛>이라는 이색적인 제목이 눈길을 끈다. 서울 집중이 유난히 심한 한국이라 지방에서 만들어진 시집이 더욱 반갑다. 모든 시집을 다 사보는 것은 아니지만 모악에서 나오는 시집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가 확 쏠리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오십대가 되면서 나도 입맛이 변했다. 쳐다보지도 않던 나물 반찬에 젓가락을 부지런히 옮기고 쌉싸름한 맛의 오묘함을 알게 되었다. 시인이 말했던 달달한 쓴맛이란 대체 무슨 맛일까. 지금까지 맛본 적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맛이다.

그의 대표시로 손색이 없는 시에서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를 절창으로 풀어냈는데 세상살이가 그렇게 명확한 맛으로 구분되어 살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 달달한 쓴맛을 읽으며 소박한 어휘로 풀어 쓴 시맛을 제대로 봤다.

군대 선배 중에 야구 선수 출신이 있었다. 내가 작대기 하나 달고 겁 먹은 촌닭처럼 신고식을 할 때 그는 작대기 세 개에서 하나를 더 보탤 참이었다. 국가도 일본과 우리처럼 붙어 있는 나라끼리 다툼이 있듯이 군대도 깃수 차이기 몇 달 안나는 놈들끼리 서로 군기를 잡고 아웅다웅 두둘겨 패고 한다.

그 선배와 나는 너무 멀리(?) 있어서 직접 부딪치고 시달림을 받은 적은 없다. 뭔가 서로 코드가 맞았는지 선배는 비교적 나한테 관대한 편이었다. 그는 거의 매일 부대 한쪽 모퉁이에 타이어를 묶어 놓고 야구 배트로 때리는 연습을 했다.

언젠가 둘이 한 조가 되어 보초를 선 적이 있는데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그가 바다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자기는 제대 후에 꼭 프로 구단에 입단하겠다고,,,, 고교야구 명문 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나 주전보다 후보 자리가 더 익숙했단다. 그래도 희망으로 가득했다.

나도 야구를 워낙 좋아해서 그의 선수 시절 얘기와 해박한 야구 상식이 흥미로웠다. 그는 진지하게 들어주는 나를 보며 흐뭇해했다. 운동 선수의 폭력이 군대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그에게 처음 들었다. 그는 제대 후에 여러 번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지금이야 2군 제도가 정착이 되어 있으나 당시는 그러지를 않았다.

그때 2군 제도가 있었거나 그가 20 년쯤 후에 태어났다면 분명 2군 경기인 퓨처스리그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만 할 수 있다면 연봉은 최저 월급도 상관 없다고 했다. 그는 끝내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하고 서른 중반까지 사회인 야구를 하다 쓸쓸한 중년으로 시들어갔다.

편견이라고 할지 모르나 운동 선수 출신들이 나이트클럽 사장이나 (그중 삐끼도 있다) 재개발 철거 용역회사 직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선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전한 직장이었으나 대체로 몸으로 때우는 험하고 힘든 일을 했다.

매도 맞아본 놈이 잘 맞는다고 그는 자주 넘어졌지만 언제나 긍정적이고 꼿꼿했다. 중학교 때부터 야구 선수를 하면서 매 맞는 데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밑천이라면 밑천이다. 매 맞는 그 밑천이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을까.

이 시집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그 선배가 생각난 것은 이름이 발음 상 비슷하고 시인처럼 그도 전북 출신에다 달달한 쓴맛을 알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활동하는 안성덕 시인은 많이 알려진 시인은 아니지만 예전에 읽었던 그의 첫 시집을 기억하고 있다.

투박한 듯하면서 은은한 울림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시집에는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많이 정제 되었다. 고단한 노동 뒤에 국밥 한 그릇 비우고 난 후의 뿌듯함을 느낀다. 시집을 덮으며 간만에 마신 봉지커피의 달달한 맛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