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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김웅

올초부터 읽어야지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나올 때부터 흥미를 주는 책이었는데 읽으면서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든 영화든 고르고 골라 선택했는데 막상 접하고 아니다 싶을 때가 많은데 이 책은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은 제목을 영화 검사외전에서 따온 듯하다. 출판사의 영업 방침이니 그렇다손치고 오락범죄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겠으나 구성이 엉성한 영화에 비해 이 책은 현직 검사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아주 생생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영화보다 훨씬 재밌다. 저자 소개를 하면 1970년 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 이래 여러 지방 검찰에서 평검사 생활을 했다. 회사원과 마찬가지로 경력이 쌓이면서 승진을..

네줄 冊 2018.06.02

우리 기쁜 절벽 - 서규정

우리 기쁜 절벽 - 서규정 서둘러 가는 것은 길이 아니라 도착이었다. 길가에 나온 사람들은 먼지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끝이 없는 길 잘 가라고 인사는 건넸다. 어디선가 직각으로 꺾일 것 같은 길 위에서 무엇인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고 덮였다. 꽃들이 피어났다. 사람들이 꽃처럼 피식피식 웃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지만 오래오래 덮이기를 바란다. 아직도 좁다. 성냥개비처럼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세상을 깜박 밝힌 죄로 스스로의 목을 매달고 처형된 불꽃, 무죄의 그늘이 흔들릴 때 숨어 있다 온 누리를 비치는 먼동이 되는 것. 아마 내일은, 땅은 쩡쩡한 햇빛에 의해 뜨거워졌으며 길들은 모두 활개를 치며 떠난다. 정오의 길은 늘어진 탓에 늦게 떠나지만 출발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합 대신 고속도..

한줄 詩 2018.06.02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 김이하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 김이하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지만 고향을 떠난 빈자리에는 언제나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아래 손 떨리는 어머니의 슬픔이 무더기 무더기로 쌓여 코스모스 꽃을 피우고 우리는 돌아가지 않지만 손사래 하염없이 그 계절은 오고갔다, 그때 무엇이 우리의 허전한 등을 덮고 있었을까 가만 생각해 보면 알 것 같다 아주 지나가 버린 날이지만 고향을 떠난 빈자리에는 언제나 미루나무 한 그루 그 희뿌연 모습으로 어머니 살아 어여어여 가거라 하시며 우리들 등을 다독거리던 마음이 세상 쌀쌀한 마음 다 막아 주었겠다 그러나 지금 그 미루나무와 어머니는 우리들의 길에서 한참 비껴 서 계시다 고속버스 차창에 멀리 있는 걸 보면 애초에 이 길이 아니었다 문득 등이 시리다 *시집, 타박타박. 새미 ..

한줄 詩 2018.06.01

늙은 세월이 늙은 사내에게 - 박순호

늙은 세월이 늙은 사내에게 - 박순호 온기 없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꽉 잠기지 않는 삶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틈에서 삭히고 삭혔던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을 것이다 틀어막아도 그 수위를 넘어 볼을 타고 흘러내렸을 것이다 여러 날 필라멘트가 끊겨 있던 전구는 불 밝히는 시늉이라도 내고 싶은지 얇은 유리 막 속으로 햇빛을 끌어당기고 있다 그가 수족(手足)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 들숨과 날숨이 고르게 늙어가는 세월의 몸을 보았다고 한다 쌀을 얻어가며 미안해서 던지고 간 빈말이라 생각했다 또 한 번은 세월이 자꾸만 말을 건네 온다고 한다 돈 만원을 빌리며 멋쩍어서 하는 말이려니 생각했다 세월이 늙는다니,,,, 세월이 말을 건네 온다니,,,, 고창병원..

한줄 詩 2018.06.01

떠나가는 길 - 박남원

떠나가는 길 - 박남원 누가 와서 묻거든 누가 와서 반쯤 허전해 하는 얼굴을 하고 그 역시 바람부는 달밤의 길을 건너와 표정도 없는 흐릿한 음성으로 나를 묻거든 떠나더라고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더라고. 노상 바람은 그렇게만 불고 창문 밖 부딪치는 이슬 떨어지는 찬 이슬을 밟으며 꺼진 보안등 밑을 말없이 떠나가더라고 그의 물음은 한낱 내 없는 배경에 와서 머무르고 몇 마디의 머뭇거림도 멎은 후 세상에 나서 한번도 날아보지 못한 나무새 그림자는 탁자 위에 늘 엎드리어 있고 철제 난로 속 손짓하다 손짓하다 떨어지는 불의 꽃잎들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비로소 알리라 있어야 할 곳에 그대 없음을 그렇게 많은 물살이 그대와 내가 그리고 또 다른 남이 하나씩 모여 한곳에 고이기도 전에 여기는 우리가 너무 성급..

한줄 詩 2018.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