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이 배역을 버리고 싶다 - 김추인 짐짓 손수건만한 여백으로 비워 둔 마음 자리에 넌 언뜻언뜻 향기처럼 떠올라 한 두루마리의 신기루를 지어 올린다 잠깐 화려했다가 오래 날 갉는 너의 영상은 내 슬픔의 진주를 덧씌우고 덧씌워 가슴 알갱이 알갱이가 맵고 아리다 네 적막이 사막보다 더 막막할 즈음은 숨겨 둔 낙타 한 마리 정강이를 세워 길고 먼 실크로드 너를 따라가게 한다 이 지상에는 몇 개의 사막이 환상처럼 남아 바람과 모래와 태양의 추위와 전갈과 오아시스의 오, 사신(死神)과 사람과 사랑이 정답게 동행할 열사의 땅을 낮달 하나 걸어 놓은 채 날더러 따라가게 한다 로렌스여 좆아도 좆아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 아득히 흔들리는 너를 따라 *시집, 광화문 네거리는 안개주의보, 청하 그르니에의 강의실 - 김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