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땅속을 나는 새 - 김성규

마루안 2018. 6. 2. 22:11



땅속을 나는 새 - 김성규



콘크리트 철근 사이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삽질을 하던 사내가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비벼 끄던 사내의 신발이 멈추고

벽돌을 쌓던 사내가 귀를 가린다


한번도 날개를 파닥이지 않고

새는 곧장 공사장 바닥에 떨어진다


날개를 접은 새의 몸에서 피가 흐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든다

자기가 새인 줄 알았나보지,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온 작업반장이 손을 떤다


석회가루를 뿌려도

깃털처럼 쏟아진 핏방울은 지워지지 않는다

레미콘차가 다시 달리고 벽돌이 하늘로 올라가고

철근이 건물을 동여맨다


새는 하늘에서 땅속으로 날아간다

땅속에서 날개를 젓는 새 한 마리 때문에

종일 공사장의 진동이 멈추지 않는다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 창비








불길한 새 - 김성규



눈이 내리고 나는 부두에 서 있었다

육지 쪽으로 불어온 바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넘어지고 있었다


바닷가 파도 위를 날아온 검은 눈송이 하나,

춤을 추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은 몸을 웅크리고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마구 흔들었다


눈송이는 점점 커지고, 검은 새

젖은 나뭇잎처럼 처진 날개를 흔들며

바다를 건너오고 있었다

하늘 한 귀퉁이가 무너지고 있었다


해송 몇그루가

무너지는 하늘 쪽으로 팔다리를 허우적였다

그때마다 놀란 새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너는 잘못 날아왔다

너는 잘못 날아왔다






# 하늘에도 길이 있다. 비행기가 나는 길, 새가 나는 길, 구름이 가는 길,, 한없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이런 시를 좋아한다. 어두운 문구에 눈길이 가는 유전자가 있다. 어둠은 나의 기쁨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내가 그렇다. 이 시가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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