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 김이하

마루안 2018. 6. 1. 20:57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 김이하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지만

고향을 떠난 빈자리에는 언제나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아래 손 떨리는 어머니의 슬픔이

무더기 무더기로 쌓여 코스모스 꽃을 피우고

우리는 돌아가지 않지만 손사래 하염없이

그 계절은 오고갔다, 그때 무엇이

우리의 허전한 등을 덮고 있었을까

가만 생각해 보면 알 것 같다

아주 지나가 버린 날이지만

고향을 떠난 빈자리에는 언제나 미루나무 한 그루

그 희뿌연 모습으로 어머니 살아

어여어여 가거라 하시며

우리들 등을 다독거리던 마음이

세상 쌀쌀한 마음 다 막아 주었겠다

그러나 지금 그 미루나무와 어머니는

우리들의 길에서 한참 비껴 서 계시다

고속버스 차창에 멀리 있는 걸 보면

애초에 이 길이 아니었다

문득 등이 시리다

 

 

*시집, 타박타박. 새미

 

 

 

 

 

 

섬 하나로 떠 있는 - 김이하


집 떠나올 때 나는
섬이 되자고 했다
파란만장한 세상, 섬 하나 되어
저 너른 망망대해를
나 혼자 가지자고 했다.
가슴 가득 불타는 해를 안고
내가 희망이고자 했다

집 떠난 뒤 한참
나는 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섬뜩한 세상 풍파 그 물결대로
흐르다 흐르다 가지 못하면
막막한 세상 훌쩍 뛰어넘어
먼 바다 홀로 몸 적시고
슬픔 묻었더니

어느 날 집이 그리워 돌아서면
떠나온 길 너무 낯설어
오도카니 낡은 흑백 사진 들여다본다
이마엔 하얗게 말라 버린 갈매기 똥 자국
까마득한 기억으로 남아
숱한 날 가슴 욱신거리게 하던
지워진 섬 하나

집 떠나오고 나는
섬이 되었다
불 끓는 가슴 아무래도 못 버리고
어느새 사립문 밖 서면
다시 먼 바다 떠밀리는
고도, 섬 하나로 떠 있는 나는
애면글면 그대에게 흘러보지만
아는 이 있나, 어디
안개는 날 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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