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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들밥 - 이성배

집밥 들밥 - 이성배 삼 년 전 귀농해서 구절초 농사를 짓는 김 선생은 이제 몸도 건강하다. 오랜만에 올라와 데려간 허름한 골목식당, 청국장 한술 뜨더니 어머니가 끓여주던 맛이라며 눈알을 부라린다. 나도 따라 지긋이 눈 감아 본다. 수수 빗자루, 지게 작대기가 번쩍 하더니 눈물이 찔끔 날 것 같다. 자기 땅 한 평 없이 사계절을 나는 동안 어머니의 반찬은 찬물이거나 짠지이거나 허기였으나 그래도 집밥이라면 한 가지쯤 없으랴. 언 땅보다 먼저 허기가 풀린 뒷동산에서 캐 먹던 칡뿌리, 뱀 나온다고 가지 말라던 찔레 덤불의 어린 순, 한두 번쯤 밭두렁으로 굴러 박히며 따먹던 오동개, 들밥만 먹은 나에게 집밥은 참 부러운 반찬이다. 김 선생에게 구절초 조청에서 칡 맛이 난다고 질겅질겅 웃어 주었더니 알 듯 모를 ..

한줄 詩 2019.08.03

우리 강산을 그리다 - 조선 실경산수화 전시회

모두들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난 서울 거리가 한산하다. 해마다 이런 한적함을 즐기기 위해 남들 떠날 때 일부러 남는다. 잠시라도 사람 부대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은 딱 2주 정도다. 간다 간다 하면서 미루던 전시장을 찾았다. 국립박물관으로 피서를 온 셈이다. 실경산수화, 교과서에서 배우던 용어다. 실제 산을 보고 그린 사실적인 그림이라는 말이겠다. 그래도 내 눈에는 많은 그림이 비현실적이다. 아니 초현실적이다. 이런 그림 앞에 서면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늘 봤던 그림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학교에서는 피카소나 고흐 그림을 먼저 배웠다. 우리 그림은 있어 봤자 몇 꼭지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선지 몰라도 나는 우리 그림보다 서양 그림이 더 좋다. 인상파 작가들 많이 좋아한다. 특히 뭉크와 ..

여덟 通 2019.08.02

갑충(甲蟲) - 전형철

갑충(甲蟲) - 전형철 먼지다듬이벌레가 되고 싶어 한 생을 결딴내는 다른 한 생을 세상의 모든 비명들은 힘이 세고 훔친 책 속에 문장들은 쉬이 발음하기 어렵지 크고 둥근 머리 방패로 기어들고 싶어 불경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고 가면은 늘 화려한 법이지 네가 있어 내가 아니라 내가 있어 오늘이 있지, 내일도 있지 산 것의 밑바닥을 보고 산 것의 모든 주석을 지워 버릴게 살을 녹이고 뼈와 골수를 밀어내 갑주를 입고 턱을 벼렸으니 너의 중심도 쏠아 줄게 가장 아름답고 독한 저주의 말을 남겨 줘 더듬더듬 채록된 비명들로 먼 훗날의 별자리로 어둠의 화인(火印)으로 밤을 관통해 혼자 알을 슬 테니 *시집, 고요가 아니다, 천년의시작 갑골(甲骨) - 전형철 이 문장은 지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틔운 뿌리들의 심장이다 ..

한줄 詩 2019.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