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한, 생각하는 - 김재홍

마루안 2019. 7. 29. 22:56



무한, 생각하는 - 김재홍



갈라져서 혹은 찢어져서
부서져서 무너져서 흩어져서 오는
혹은 올


가기를 바라는
혹은 갈


희망이 아니라 가능성을
가능성이 아니라 무수한 나르
내가 아니라 나 없는 나를


떠난 자리에 남은
빈자리가 아니라 빈
혹은 가득 찬
혹은 솟구치는 넘치는


고통은
보이지 않는 사라진
다른 불안이거나 불일치거나 불협화음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바라거나 꿈꾸거나 기대는 것임을


통째 몰려오는
바위거나 절벽이거나 쇠붙이거나
회환이거나 눈물이거나 절망임을


나 없는 나를 향한 나의
알 수 없는 그것은 무한한
나의 무한임을



*시집, <주름, 펼치는>, 문학수첩








그 개는 음악적이었다 - 김재홍



아침부터 그 개는 주름을 펼쳐
육신을 담을 그릇과 그릇이 놓일 땅과 그릇을 씻을 물과 함께 왔다


목장갑들의 섬세하고 깊은 주름
장방형의 닫힌 그물 꽉 찬 허기
메마른 허공의 쇳소리


그 개는 한 그릇의 햇빛과 바람과 나뭇잎과 함께
허공 속에서 울부짖었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의 욕망
고개를 드는 순간의 절망 앞에서


규칙성 다음의 특이성
직선 다음의 휘어진 쇠몽둥이를 만났다


그 순간 표면적의 최대화
가차 없는 매질의 격렬한 평면성과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심연까지
나는 그 개의 화성학을
비명의 불규칙적 멜로디가 아니라
음표 바깥으로 솟구치는 수직의 공포를 보았다


한 그릇의 허기와 육박해 들어가는 욕망과
보이지 않는 맡을 수 없는 살의와 운명과 함께 왔다


허기와 허기 사이
아침부터 그 개는 음악적이었다






# 운율이 매끄럽지 않아 읽기에는 다소 까칠까칠하나 묘한 중독성에 빠지게 하는 시다. 이것도 이 시인만이 갖고 있는 개성이다. 선인장 가시를 만진 듯 움찔했다가도 다시 만지고 싶어진다고 할까. 불규칙적으로 걸었던 길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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