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한 끼의 밥 - 송문희

마루안 2019. 7. 30. 19:50



한 끼의 밥 - 송문희



을숙도에 바람처럼 머문 적 있다
창을 열면 조각상들 감천항 선박처럼 정박해 있고
매일 고단한 삶 관망하던 나는
바닥에 엎드린 한 사내를 만났다


을숙도 조각공원
한끼의 밥*이란 이름으로 엎드린 사내
오로지 밥을 위해 세상 앞에 무릎 꿇고 귀를 막았다
천만 근 한 닢 금속성은
얼마나 달콤한 차가움인지
바닥을 향해 숨죽인 등에서 뼈가 녹아내리는 소리 들렸다


아버지 같은,


한 번도 환한 것 품어본 적 없던 두 손에
거역할 수 없는 그늘의 시간들
한 겹 한 겹 포개어져 있다
한 끼의 밥 구걸하는 저 빈손은 얼마나 많은 굴욕을 견디었나
주린 배 채우기 위해
팔꿈치와 무릎으로 기어야 한다


맨발의 사내
두 손 벌려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시집,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문학의전당








행복의 온도 - 송문희



회식은 늘 돼지국밥이다


한 뚝배기면 속이 든든하고예 고기 몇 저름 다 지 몫이니
인정머리 없이 다투어 먹을 일 없고예
차려 먹기 귀찮은데 두세 끼니 걸러도 거뜬하지예
젤로 좋은 거는예, 속이 뜨뜻해져서
오래 살고 있는 내가 다 용서가 되는 거라예


후루룩 땀 흘리며 먹는 물컹한 돼지국밥
녹록치 않은 독거를
푸념도 넋두리도 아닌 노랫가락처럼 훌훌
씹어 삼킨다


까막눈 뜨겠다고
아침 첫차 타고 두 번 갈아타고
기역, 니은, 힘든 걸음, 다 늦은 나이에 배우는 게 행복하다고
기름값에도 못 미치는 강의료가 가끔 서운했던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고


돼지국밥 먹던 날
돼지는 죽어서도 너와 나, 뜨겁게 살맛나게 하는 것을
사람도 그래야 되지 않겠냐 하시는


아직 뜨거운 팔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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