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집밥 들밥 - 이성배

마루안 2019. 8. 3. 21:39

 

 

집밥 들밥 - 이성배

 

 

삼 년 전 귀농해서 구절초 농사를 짓는 김 선생은 이제 몸도 건강하다.

오랜만에 올라와 데려간 허름한 골목식당, 청국장 한술 뜨더니

어머니가 끓여주던 맛이라며 눈알을 부라린다.

나도 따라 지긋이 눈 감아 본다.

수수 빗자루,

지게 작대기가 번쩍 하더니 눈물이 찔끔 날 것 같다.

 

자기 땅 한 평 없이 사계절을 나는 동안 어머니의 반찬은

찬물이거나 짠지이거나 허기였으나 그래도 집밥이라면

한 가지쯤 없으랴.

 

언 땅보다 먼저 허기가 풀린 뒷동산에서 캐 먹던 칡뿌리,

뱀 나온다고 가지 말라던 찔레 덤불의 어린 순,

한두 번쯤 밭두렁으로 굴러 박히며 따먹던 오동개,

들밥만 먹은 나에게 집밥은 참 부러운 반찬이다.

 

김 선생에게 구절초 조청에서 칡 맛이 난다고 질겅질겅 웃어 주었더니

알 듯 모를 듯 김 선생은 역시 집밥이란다.

 

 

*시집, 희망 수리 중, 고두미

 

 

 

 

 

 

중부, 흐리고 한때 비 - 이성배

 

 

늦깎이 목수 한씨는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비 냄새를 맡았다.

심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안다.

바람은 너무 멀리에서 온 장면이었고

망치질에 관념적으로 맞은 손가락은 통증이 없었다.

 

예뻤던 동생은 아이 셋에 만삭의 몸으로 안부 전화를 걸어 왔고

기침이 심해진 아버지는 이백오십 밀리의 낡은 거푸집에 집착했다.

조만간 아귀가 흔들릴 것을 알면서 비스듬히 지른 못 하나가

유일한 결속인 하부구조가 있다.

 

한씨는 굴뚝 같은 숨구멍으로 소나기가 쏟아지는 상상을 진통제처럼 복용했다.

아찔한 경사의 기도를 적시고

거푸집이 터져 엉망이 된 콘크리트 같은 폐를 지나

오가는 사람 없어 헤지고 있는 긴 굽이를 돌아 비릿하게 역류할 즈음이면

물속에 담근 빨래처럼 유연해질 수 있으리라.

 

한씨는 철거 중이던 각재를 손바닥으로 펴서 잡고 손등에

대못을 박다가 현장에서 끌려 나갔다. 마지막

심야버스는 오지 않았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움직이는 자화상 - 안태현  (0) 2019.08.03
지렁이 꽃 - 김남권  (0) 2019.08.03
축산항, 그해 여름 - 정훈교  (0) 2019.08.02
셔틀콕 - 이도훈  (0) 2019.08.02
그럴 나이가 되었다 - 조항록  (0) 2019.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