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남자 - 김병호 창밖의 남자 - 김병호 텅 빈 노래가 지나는 창에 거친 흉터의 바람이 이따금 이마를 찧곤 한다 마음 한 자리가 파여 아주 저물지 못한 사내 멀리 구름이 두꺼워지고 그새 늙은 창이 꽃 진 나무를 어르면 저녁은 멀리 빙하기를 건너온다 창밖의 사내가 품고 온 어둠에 가만히 손을 대어본다.. 한줄 詩 2019.08.18
무인도 - 이영광 무인도 - 이영광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받고 싶.. 한줄 詩 2019.08.16
김원봉 평전 - 김삼웅 휴가철이라 거리가 한산하다. 매일 자동차와 실랑이 벌이면서 사람에 부대끼던 중이렇게 헐렁해진 서울 거리가 좋다. 한동네에 사는 친구가 여름 휴가를 가면서 기르는 강아지를 부탁했다. 애견 호텔에 맡기고 싶은데 작년에 안 좋은 경험이 있어 싫단다. 기꺼이 내가 맡기로 하고 아예 며칠 친구 집으로 출퇴근을 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 기회에 밀린 책이나 실컷 읽어야지였다. 그중의 하나가 김원봉 평전이다. 읽으려고 했던 책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순서가 밀린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애초에 읽을 책 목록에 없던 책이다. 올해 이 사람처럼 논란의 대상이 된 인물이 있을까. 김원봉 선생은 걸어온 길에 비해 크게 주목 받지 못한 인물이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기념사에서 선생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내가 .. 네줄 冊 2019.08.16
70세 사망법안, 가결 - 가키야 미우 웬만해서 소설을 읽지 않는 내가 호기심이 가는 독특한 제목 때문에 아주 진지하게 읽었다. 이 소설은 빼어난 문학적 문장보다는 내용에 있다. 메시지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공감이 간다. 그렇다고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는 사회성이 짙은 것도 아니다. 노령화가 심각한 일본이다. 모든 사람은 70세가 되면 죽어야 하는 법이 통과 되어 2년 후에 실행된다. 그러니까 현재 68세인 사람도 88세인 사람도 남은 생애는 2년뿐이다. 신문이고 TV이고 이 법의 실행을 두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 빼고 대부분의 노인들은 반대다. 반면 대다수 젊은이는 찬성이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극명하게 입장이 갈린다. 당연하다. 어서 죽어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노인네를 3대 거짓말쟁이라.. 네줄 冊 2019.08.16
시간의 필사자 - 김학중 시간의 필사자 - 김학중 시간은 몸도 없이 변신을 한다 변신을 하면 시간이 되고 그것은 시간의 몸이 된다 그 몸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을 모르니 거기에 있다 오랜 후에 누군가는 그 몸을 시간의 필사자라고 했다 어느 날 창조되었는지 알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을 불러내기 위해 필사자들은.. 한줄 詩 2019.08.12
아는 병은 괜찮은가 - 정다운 아는 병은 괜찮은가 - 정다운 살이 7킬로가 빠져 집에서도 기절한 적이 있었다 나만 하는 게 아니니 자랑할 만한 입덧은 아니었다 병문안을 오래서 갔더니 말라빠진 나를 보고 환자가 그랬다 넌 아는 병이니 괜찮다 학력 직업 너의 구부정한 등이 맘에 들지 않고 내향성 발톱이 네 성격만.. 한줄 詩 2019.08.12
옥상의 스핑크스 - 김수우 옥상의 스핑크스 - 김수우 쓸쓸한 분노도 그예 쭉정이고 말 때 옥상으로 간다 깃발이 걸레만 할 때 슬리퍼를 끌고 옥상으로 간다 마침내 당도한 듯 항해, 나침반, 자유 등의 단어가 새로울 때 단어들이 낯설 때도 녹슨 난간 붙들고 옥상으로 간다 마침내 출발한 듯 늙은 세발자전거가 신전.. 한줄 詩 2019.08.11
햇빛과 먼지와 황무지와 그리고 - 김태형 햇빛과 먼지와 황무지와 그리고 - 김태형 그러니까 황무지란 아무것도 없는 곳이어야 한다 뜨거운 햇빛 아래 잠시 서 있는 것도 함께 같은 지평선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것도 서로 딴 생각에 눈감고 있을 뿐인 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구름을 바라보려고 했다 오.. 한줄 詩 2019.08.11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 구정은 지난 봄 여행길에서 본 일이다. 막 해가 넘어가는 어느 바닷가 포구에 앉아 있었다. 몇 척의 고깃배를 빼고는 대부분 낚시배들이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포구다. 한쪽에서 다섯 명의 중년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복장을 보니 아마도 밤낚시를 온 모양이었다. 출항할 낚싯배를 기다리며 미리 요기를 하는 중이다. 뒷자리를 정리하고 각종 쓰레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든 한 사람이 두리번거리며 "버릴 곳이 없네" 하니 다른 사람이 말했다. "전부 배에다 실어, 바다에 나가서 버리면 되잖아" 했다. 그러자 바로 "굿 아이디어"라며 맞장구를 친다. 잠시 후 배 주인이 나타나서 그들을 싣고 떠나는 것을 봤다. 바닷가 주민들도 처리 곤란한 쓰레기를 바다에 나갈 때 가지고 가서 버린다는 얘길 들었는데 낚시꾼들까지.. 네줄 冊 2019.08.09
느닷없이 - 조유리 느닷없이 - 조유리 누구나 간혹 겪는 일이겠지만 느닷없이 들이닥칠 때 느닷없다 화창했던 날씨에서 느닷없이 우박이 쏟아져 주차 중인 자동차 범퍼가 느닷없는 봉변을 당했을 때나 후불제 교통카드를 찍었는데 잔액이 모자란다고 느닷없는 난감에 쳐했을 때나 정말 느닷없게 닥치는 일.. 한줄 詩 2019.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