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갑충(甲蟲) - 전형철

마루안 2019. 7. 28. 19:16

 

 

갑충(甲蟲) - 전형철


먼지다듬이벌레가 되고 싶어
한 생을 결딴내는 다른 한 생을
세상의 모든 비명들은 힘이 세고
훔친 책 속에 문장들은 쉬이 발음하기 어렵지
크고 둥근 머리 방패로
기어들고 싶어
불경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고
가면은 늘 화려한 법이지
네가 있어 내가 아니라
내가 있어 오늘이 있지, 내일도 있지
산 것의 밑바닥을 보고
산 것의 모든 주석을 지워 버릴게
살을 녹이고 뼈와 골수를 밀어내 갑주를 입고 턱을 벼렸으니
너의 중심도 쏠아 줄게
가장 아름답고 독한 저주의 말을 남겨 줘
더듬더듬 채록된 비명들로
먼 훗날의 별자리로
어둠의 화인(火印)으로
밤을 관통해
혼자 알을 슬 테니


*시집, 고요가 아니다, 천년의시작


 




갑골(甲骨) - 전형철


이 문장은
지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틔운 뿌리들의 심장이다
가령 우리들의 소리는 수평으로 달려가지만
저녁과 밤의 경계에서
자주 실종된다
가죽채에 감기는 살의 촉감으로
어제로부터 어제로 공수된
도깨비들으 봉두난발이
발바닥에서 무릎을 타고
휘감아 온다
아무도 없는 방문을 두드리는 심정으로
머리를 중심에서 멀리 두고 사는 자
가장 고통스러운 저항을  견딜 것이다
세 번의 태양풍을 산
간빙기 코끼리거북의 비명이
수신된다
형태(卦)는 파탄을 따라가고
검은 무당들의 문장이
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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