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삼월의 눈보라 - 박승민

삼월의 눈보라 - 박승민 저 때 아닌 것들 영원하지도 않은 것들 온 산을 뿌옇게 추상화로 춤추네 허공에서 봉두난발로 내려와 지상의 외로운 발바닥들 온몸으로 덮네 나는 말짱한데 너는 왜 아프냐고 말도 못하는 저것 듣지도 못하는 저 허망이 자꾸 말을 거네 목숨은 허공중에 살다 순식간에 가는 거라고 천지간 분별을 지우고 풍경을 지우고 생과 사를 비웃으며 마음대로 흔들리다 가네 몸이 곧 유언장이었네 가고 싶네 처자식 버리고 막춤 추는 저 눈보라 속으로 *시집, 지붕의 등뼈, 푸른사상사 하류(下流)의 시 - 박승민 다가오는 것은 하류의 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나를 견뎌준 건 먼 과거의 어느 시간쯤에서 만난 한 순간 순간의 화인(火印) 이후는 물에 갇힌 수몰주민의 생이었고 때로는 이미 지나가 버렸을지도 모..

한줄 詩 2017.03.24

농담 - 이문재

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 시집, 제국호텔, 문학동네 기찻길은 기차보다 길어야 한다 - 이문재 라일락꽃 피고, 아, 하복 윗주머니 파란 잉크 자국 생각 오래된 여자상고가 있던 곳, 담장을 끼고 봄의 왼쪽으로 돌아나오는데 물끄러미, 내가 앞서가는 내 잔등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 생각은 生覺일 때가 있어서 생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하여, 나를 따라오지 않고 서 있는 나를 부르는 것인데 저기, 열일곱 라일락 ..

한줄 詩 2017.02.02

이런 게 필요한 아침 - 임곤택

이런 게 필요한 아침 - 임곤택 잡지의 표지를 손톱으로 벅벅 긁어 드러난 그런 배경이 좋겠다 창에 은박지를 붙여놓았다 새들어온 빛이 환등기같이 담배연기를 비춘다 좀 눌은 벽지 위가 좋겠다 한 아저씨가 다가와 바지를 쓱 내리는 변두리 극장쯤이 좋겠다 게슴츠레한 노래가 좋겠다 책보다는 거울이, 일자로 다듬은 콧수염이 좋겠다 담배를 또 문다 새벽까지 아이들에게 글 잘 쓰는 비급을 전수하고 소주 딱 한 병 마시고 온 아침 신문은 오지 않는 게 좋겠다 빨간 코의 유쾌한 광대가 문 두드리면 좋겠다 당신의 나라가 흑백으로 치직거리고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고 *시집, 지상의 하루, 문예중앙 이런 안부를 묻다 - 임곤택 머리가 맑다 작은 소리가 잘 들린다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우스웠는데 매년 봄 가야 하는 병..

한줄 詩 2017.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