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돌아서는 충청도 - 이정록

마루안 2017. 2. 20. 19:56



돌아서는 충청도 - 이정록



울진에다 신접살림을 차렸는디,
신혼 닷새 만에 배타고 나간 뒤 돌아오덜 않는 거여 만 삼년 대문도 안 잠그구 지둘르다가 남편 있는 쪽으로 온 게 여기 울릉도여


내 별명이 왜 돌아서는 충청돈 줄 알어?
아직도, 문 열릴 때마다 신랑이 들이닥치는 것 같어 근데 막걸리집 삼십년, 남편 비스무르한 것들만 찾아오는 거여 그때마다 내가 횅하니 고갤 돌려버리니까 붙어댕긴 이름이여
그래도, 드르륵! 저 문 열리는 소리가 그중 반가워


그짝도 남편인 줄 알았다니껜.
이 신랑스런 눔아, 잔 받어! 첫 잔은 저짝 바다 끄트머리에다가 건배하는 거 잊지 말구 그 끝자럭에 꼭 너 닮은 놈 서 있응께



*시집, 정말, 창비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 - 이정록



-이게 마지막 버스지?
-한대 더 남았슈.
-손님도 없는데 뭣 하러 증차는 했댜?
-다들 마지막 버스만 기다리잖유.
-무슨 말이랴? 효도관광 버슨가?
-막버스 있잖아유. 영구버스라고.
-그려. 자네가 먼저 타보고 나한테만 살짝 귀띔해줘. 아예, 그 버스를 영구적으로 끌든지.
-아이고, 지가 졌슈.
-화투판이든 윷판이든 지면 죽었다고 하는 겨. 자네가 먼저 죽어.
-알았슈. 지가 영구버스도 몰게유. 본래 지가 호랑이띠가 아니라 사자띠유.
-사자띠도 있남?
-저승사자 말이유.
-싱겁긴. 그나저나 두 팔 다 같은 날 태어났는데 왜 자꾸 왼팔만 저리댜?
-왼팔에 부처를 모신 거쥬.
-뭔 말이랴?
-저리다면서유? 이제 절도 한채 모셨고만유. 다음엔 승복 입고 올게유.
-예쁘게 하고 와. 자네가 내 마지막 남자니께.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창비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밥을 먹다 숟가락을 놓고 - 성선경  (0) 2017.03.03
승부처 - 오은  (0) 2017.02.21
지금 사랑은 건강하신가 - 정성태  (0) 2017.02.16
농담 - 이문재  (0) 2017.02.02
이런 게 필요한 아침 - 임곤택  (0) 2017.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