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가을 - 이수익 흔들리는 가을 - 이수익 앞으로 또 다시 추운 겨울이 오리라는 예감 때문에 스스로 옷을 벗는 나무들, 물이 마르는 강바닥, 추수로 비어가는 들판, 하늘마저 끝없이 맑고 푸르니. 잠시 무슨 전야의 등불처럼 우리들 마음 어수선히 흔들리고, 나는 무한정 네가 그립고, 바람따라 어디론가 .. 한줄 詩 2016.10.17
오늘은 나의 날 - 유계영 오늘은 나의 날 - 유계영 내가 너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너의 바깥에 장롱처럼 버려질 것이라는 예감은 2인용 식탁처럼 물끄러미 불행해질 것이라는 예감은 모두 틀렸다 입안에 총구를 물고 방아쇠를 당겨 봐 바람 맛이 난다고 했다 하필 내가 가진 총 속에만 가득했던 총.. 한줄 詩 2016.10.17
백발의 그리움 하나 - 홍윤숙 백발의 그리움 하나 - 홍윤숙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일까 한 시대 에둘러 돌아와 후득이던 고향의 예감 같던 바람 소리 한 시절 바람은 나의 내부에서 일어났다 아니 내 몸 전체가 온통 한 푸대의 바람이었다 나는 날마다 들끓는 바람이 되어 세상의 끝을 헤매 다녔고 돌아오는 길은 .. 한줄 詩 2016.10.16
거룩한 죄인 - 김장호 거룩한 죄인 - 김장호 -전봇대 26 당신은 몇 번입니까? 눈만 뜨면 순위가 매겨지고 통장잔고 확인하듯 수시로 자신의 위치를 보고해야 한다 당신은 번호공화국의 거룩한 시민 언제 어디서든 번호순 구령소리 울리면 즉시 새로운 번호를 승인받아야 한다 모르면 우왕좌왕 틀리면 속수무책 .. 한줄 詩 2016.10.09
다 스쳐 보낸 뒤에야 사랑은 - 복효근 다 스쳐 보낸 뒤에야 사랑은 - 복효근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산길에선 정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정상이 어디냐 물으면 열이면 열 조금만 가면 된단다 안녕하세요 수인사 하지만 이 험한 산길에서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 반갑다 말하면서 이내 스쳐가 버리는 산길에선 믿을 사람 .. 한줄 詩 2016.10.09
슬픔의 약력 - 윤의섭 슬픔의 약력 - 윤의섭 어느덧 단풍 들 차례다 서녘에 파리한 얼굴을 반쯤 파묻은 낮달이 떴으나 이변으로 기록되진 않았다 하루마다 노을 지지만 파국의 흔적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시월의 잉크가 나뭇잎을 물들여 가는 사태는 한 줄 문장으로도 기입되지 못한다 다만 이 모든 .. 한줄 詩 2016.10.06
미루나무에 노을을 붙들어 매며 - 성선경 미루나무에 노을을 붙들어 매며 - 성선경 그대 그러지 마시게 해가 진다고 마음도 노을이 들까 깔고 앉은 바위에서 엉덩이를 들어 툭툭, 돋아나는 별들을 가리키며 돌아서면 아직도 아쉬운 노을 같은 사람아 그대 그러지 마시게 해가 산을 넘는다고 그리 쉬 잊힐까? 나는 아직도 지는 해.. 한줄 詩 2016.10.02
산책길 - 김명기 산책길 - 김명기 가을이 되면 한 줄 이력이 되는 기침이 밤새 내 몸을 핥고 간 이른 아침 잠 덜 깬 관절로 야윈 길을 걷는다. 뒤꿈치 바깥쪽으로 잘 닳은 오래된 신발 같은 길 앉은 자리 꽃 피웠던 것들이 사라져 그 길 같은 빈 대궁만 남은 길을 아주 천천히 걷다가 문득, 오래전 이곳이 길.. 한줄 詩 2016.09.25
가을 부근 - 정일근 가을 부근 - 정일근 -경주 남산 불락(不樂) 무행처(無幸處)의 더운 여름이 찾아왔을 때도 남산은 침묵하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여름꽃들이 시들며 가을이 온다고 개울물들이 차가워지며 가을이 온다고 계절의 전언을 전해주어도 산은 면벽하고 앉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줄 詩 2016.09.23
소문난 가정식 백반 - 안성덕 소문난 가정식 백반 - 안성덕 식탁마다 두서넛씩 둘러앉고 외따로이 외톨박이 하나,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내와 나를 반 어거지로 짝 맞춰 앉힌다 놓친 끼니때라 더러 빈자리가 보이는데도 참, 상술 한 번 기차다 소문난 게 야박한 인심인가 싶다가 의지가지없는 타관에서 제 식구 아닌 .. 한줄 詩 201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