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밥을 먹다 숟가락을 놓고 - 성선경

마루안 2017. 3. 3. 20:55



밥을 먹다 숟가락을 놓고 - 성선경



열심히 일한 머슴이 주인의 중매로
식모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랑 신부가 되었는데
꿈같이 첫날밤을 맞아
무를 뽑아 총각김치를 담그는데
파김치가 되도록 김치를 담그는데
그 맛에 반한 신부가
매워서 호호거리는데
자꾸 맵다고 호호거리는데
신랑이 자꾸 그러면 누가 듣고
좀 달라고 그럴까 걱정하는데
이번엔 배추김치를 담는데
신부가 쌈을 싸서 한입 먹이는데
신랑도 맵다고 호호거리는데
신부도 걱정이 되어
누가 듣고 좀 달라고 그럴까
걱정되는데 자꾸 호호거리면
좀 달라고 그럴까 걱정되는데
열심히 일한 머슴이 주인의 중매로
식모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랑 신부가 되었는데
파김치가 되도록 김치를 담그는데
신랑 신부가 맵다고 호호거리는데
밖에서 주인 영감이
주인마님 손을 잡고
침을 꿀꺽꿀꺽 삼키는데.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산지니








갈치 싼 봉지는 갈치 비린내 나고 - 성선경



서울내기가 어쩌다 경상도 처녀를 만나
얼떨결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서는
저녁이 되어 첫날밤을 맞았는데
먼저 신부가 샤워를 하고
뒤따라 신랑이 씻고 나오는데
스킨을 바르고 신부 옆에 앉는데
경상도 신부가 말했겠다.
"참 존내 나네, 예,"
이 서울내기는 잘 못 듣고
무슨 냄새가 난다고 다시 들어가 씻고 나와
조심조심 또 신부 옆에 다가앉는데
경상도 신부가 다시 말했겠다.
"더 존내 나네, 예,"
그래서 그만 에라 모르겠다 돌아누워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을 먹는데 성질이 나서
밥만 우걱우걱 퍼 넣는데
경상도 신부가 또 말했겠다.
"씹도 안 하고 잘 드시네, 예."
서울내기가 어쩌다 경상도 처녀를 만나
하! 기도 안 차서 허겁지겁 돌아오는데
서울내기는 서울내기대로
경상도 처녀는 경상도 처녀대로
돌아오는 차가 갑갑하고,
비행기는 연착이 되고.





# 성선경의 시를 읽다 박장대소를 했다. 처음엔 피식 웃음을 흘리다 끝에 가서 튀밥 터지듯 웃음보를 터뜨렸다. 누구나 한 번뿐인 인생이 귀하고 소중한 것이어서 온갖 심오함으로 치장을 해도 삶이 꼭 고상하기만 하던가. 때론 사랑도 삶도 유치한 것이다. 사람 냄새 나는 이런 시에서 진짜 인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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