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 손택수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 손택수 내게도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일정표에 정색을 하고 붉은색으로 표를 해놓은 일들 말고 가령,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모종대를 손보는 노파처럼 곧 헝클러지고 말 텃밭일말정 흙무더기를 뿌리 쪽으로 끌어다 다독거리는 일 장맛비 잠시 그친 뒤, 비가 오면 다시 어질러질 텐데 젖은 바닥에 붙어 잘 쓸리지도 않는 은행잎을 쓸어담느라 비질을 하는 일 치우고 나면 쌓이고, 치우고 나면 쌓이는 눈에 굽은 허리가 안쓰러워 어르신, 청소부에게 그냥 맡기세요 했더니 멀거니 쳐다보곤 하던 일을 마저 하던 그 고요한 눈빛처럼 별 뜻도 없이 고집스레, 내 눈엔 공연한 일들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상하지 않는가, 나는 이 쓸모없는 일들 앞에서 자꾸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