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를 묻고, 또 엿보는 나를 묻고 - 김병심

마루안 2018. 2. 4. 20:39



나를 묻고, 또 엿보는 나를 묻고 - 김병심



수목장을 했다
웃는 얼굴 뒤로 감추면 감쪽같다
왠일인지 하룻밤만 자면 둥근 봉분이
나무를 등에 이고 있다
욕지거리를 묻을 땅이 더 이상 없다
나무들이 마다했으나 뜨겁게 달군 삽질 소리에
숲은 부르르 떨었을 뿐이다


누군가 엿본 게 틀림없다


다섯 갈래로 난 길마다 나무가 피를 토했다
파헤쳐진 묘지 위에 다시 잠들지 않는 묘비명을 써 넣는다
어쩌면 울퉁불퉁한 감정을 마름질하려 했을지도 모른 일
생각이 막히면 화염이 솟는다


오늘 아침 앞머리 우측에
아들에게 참았던 화를 묻은
작은 묘지 하나 파헤쳐 있다
눈도 없는 촉각으로 여기저기 나무를 파헤치고
욕을 맛보며 피를 먹었다


누군가 엿본 게 틀림없다


머리카락 사이를 누비며
뱀처럼 독을 퍼트리는
그놈이 수상하다



*시집, 바람곶 고향, 도서출판 각








때죽나무 - 김병심



손가락 총질도 모자라
말이 폭탄으로 투하되는 세상
너를 죽여야 내 영토가 넓어진다고 말하는 나무를 보았다
길게 오래 한자리에 산다는 것,
욕지거리로 굵어진 몸뚱이를 보는 일
한참, 손 청진기를 대어본다
총질은 제 가슴을 갉아먹고
좋아라 웃고 있던 포화 속으로
들어다오, 들어다오
울던 종소리
거.짓.말.무성한 꽃그늘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부의 아들 - 정원도  (0) 2018.02.04
밤 - 김유석  (0) 2018.02.04
한 끼의 식사 - 김선  (0) 2018.02.04
겨울비 내렸을 뿐인데 - 강세환  (0) 2018.02.04
사막에 들다 - 이은심  (0) 201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