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깨어 있다는 것 - 김윤환

깨어 있다는 것 - 김윤환 ​ 양계장에 밤새 켜 있는 백열등을 보고 주인에게 물었다 닭이 잠들면 알을 낳을 수 없다고 깨어 있어야만 알을 낳는다고 대답했다 깨어야 알을 낳는다는 것, 깨어 있어야 생명을 낳는다는 것, 참 가혹하면서 경이롭다 가혹한 새벽 무렵 한 알의 생명이 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이 세상에 왔을지 몰라 살아 있음이란, 무정란의 깊은 잠 그 경계선에서 불면의 가혹함을 견뎌내는 것, 기어이 결가부좌를 틀고 알을 품는 것이 아닌가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시와에세이 사즉생(死卽生) - 김윤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박정희가 죽고 박정희를 말하고 김대중이 죽고 김대중을 말한다 사람은 죽어서야 제 말을 듣는다 사람은 죽어서야 제 점수를 받는다 예수의 사람 바울도 자아가 ..

한줄 詩 2018.01.29

달빛 속의 키스 - 박남원

달빛 속의 키스 - 박남원 흥건히 젖은 달빛 길을 걸어보았는가. 어둠과 달빛에 반씩 젖은 구름 한 떼가 먼 산발치에 아무도 몰래 내려앉는 것을 보았는가. 외롭다는 것은 사람 속에 별이 저문다는 것 저문 별을 찾아 산마루길 넘는다는 것. 누구나 낮은 자들의 눈물을 말하는 것은 쉬워도 누구나 낮은 자들과 함께 걷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아도 어둠이 와도 끝내 사랑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증오마저 쌓일 만큼 그대를 사랑하고 증오마저 넘어 마침내 달빛 길에 이른다면 진실로 너를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것이리. 온몸에 어둠에 젖은 달빛을 묻히고 이 세상이 다 가기 전에 네 속으로 내려앉아 너를 안고 영원토록 키스할 수 있으리. *시집, 캄캄한 지상, 문학과경계사 뜨거워지마 - 박남원 ..

한줄 詩 2018.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