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개 같은 사랑 - 최광임

개 같은 사랑 - 최광임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 개의 눈과 마주쳤다 그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빵빵거리는데 죄라고는 사랑한 일밖에 없는 눈빛, 필사적이다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네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간의 생을 더듬어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었다 *시집, 도요새 요리, 북..

한줄 詩 2018.02.01

복기(復碁) - 김광수

복기(復碁) - 김광수 혹여, 도리천 어디에라도 잠시 화생하여 이쪽 생애를 복기할 수 있다면 수미산 제석천 그물을 찢어내 증오와 자학, 비애 , 남루의 검은 돌 그림자는 버리고 취모검, 소요자재 유유자적의 정적으로 때론 딴전을 피우며 달빛 젖은 바둑돌을 함박눈처럼 뿌릴 것이다 비록 너의 돌이 내 숨통을 짓누르며 뒤통수를 찍더라도 둥근 돌의 무늬와 환한 달빛을 볼 것이며 나의 성채를 무너뜨리고 비참하게 경멸하더라도 삼계육도 삼천대천세계가 노을 무렵 홀연 무너지는 아이들의 모래성 같을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바둑판에 들어와 있는 바둑돌만큼의 우주와 바둑판 바깥 무량광대 경계를 오가며 한바탕 비천(飛天)의 춤을 꿈꾸었음을 기뻐할 것이다 그러다 견딜 수 없이 허리가 아프면 마지막 돌을 던지고 깃털처럼 사뿐, 돌아..

한줄 詩 2018.01.30

소시민의 낭만 - 박순호

소시민의 낭만 - 박순호 칭칭 동여맨 생활이 유리창에 걸리었다 간밤에 버려진 이야기 목구멍에 걸려 여름몸살에 앓아 눕고 모래알로 밥을 안쳐 풀잎으로 김치를 담그는 즐거운 상상 부젓가락 같은 몸을 담요 한 장에 실어 허기져 헤어진 몸을 뒤척거릴 뿐 버리지 않고 붙들고 있는 가난이 고마워 찔끔찔끔 눈물이 난다 나는 세상의 담벼락 하나를 품고 꼭꼭 숨어 살아왔다 허름한 골슬레이트 지붕 위 참새떼에게도 놓아기르는 똥개에게도 뚝방 비탈에 심은 호박과 옥수수에게도 한동안 터럭조차 보여주지 않았지 여름비에 호박잎이 넓어지고 옥수수알이 굵어질 무렵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개 밥그릇에 끼니를 채워놓고 시장에 가서 순대를 사먹는다 *시집, 다시 신발끈을 묶고 싶다, 문학마을사 신호등 - 박순호 새벽을 담아 풀칠해버린 ..

한줄 詩 2018.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