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막에 들다 - 이은심

마루안 2018. 2. 3. 20:39

 

 

사막에 들다 - 이은심


나를 쪼개고 쪼개면
한 알 쓰라린 모래에 닿으리

서둘러 내 안에 옮겨 심은 선인장 어린 싹 하나
일생의 죄가 무성해지려고 나는
자꾸만 물이 켜리

다시 오마 한 적 없는 이별을 재빨리 거쳐
고비나 사하라에 이를 때
한 다발 눈물은 왜 뭉쳐지지 않는가

꼿꼿이 태양을 받치고 선
나는 누구인가
진실로 우리는 서로 얼마나 먼가
그 물음을 굴리고 굴리어 가면
오직 둥근 가시관에 닿으리

 

 

*시집, 오얏나무 아버지, 한국문연

 

 

 

 

 

 

흐린 날 - 이은심

 

 

내 등뼈가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평생 업고 다닌 나를 내려놓겠다고 하면 어쩌나

바람이 불 때마다 흐느끼는 목관악기 구멍에 아픈 사람 하나, 한 번뿐인 생을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가출해버리면 어쩌나

나는 사랑을 무사히 횡재하고 싶어 떠돌던 백수

사교적인 물렁뼈들이 빌딩의 정문에서 날품을 팔 때 휘파람에 애창곡이나 섞어 불던

한때 늠름했던 육체는 지루해졌고 타고난 골격은 여분이 없으니

내 등에 수십 년 뿌리내린 고목

빳빳하게 다림질한 와이셔츠를 입히고 이제는 내가 그의 둥근 울음을 업고 가야한다면

나 또한 쓰러져

눈밭에 구부러진 나무 한 그루로 남을 것이니

그러므로 조용한 저들의 반란을 다스릴 무기가 내게는 없으니

어쩌나

 

 

 

 

# 이은심 시인은 대전 출생으로 한남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2003년 <시와시학>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오얏나무 아버지>가 첫 시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끼의 식사 - 김선  (0) 2018.02.04
겨울비 내렸을 뿐인데 - 강세환  (0) 2018.02.04
유년의 하늘 - 이상원  (0) 2018.02.03
시간의 윤리 - 김주대  (0) 2018.02.03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 손택수  (0) 201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