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원 포인트 릴리프 - 여태천

원 포인트 릴리프 - 여태천 투수는 조심스럽게 볼을 던졌다. 전대미문의 구질을 구사한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스트리이크를 던지지 못한 저 투수의 볼과 볼의 궤적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핀치히터의 풀스윙.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들고 오늘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눈 당신과 나는 편향적인 사람. 비밀을 알아낸 자의 표정으로 왼손 투수는 다시 볼을 던지고 저 볼은 어디에 가닿을 것인가. 주심은 언제쯤 스트라이크존을 걸치고 지나가는 저 비실비실한 볼을 이해할 것인가. 가장 편향적인 방향으로 생각은 날아간다. *시집, 스윙, 민음사 마이 볼 - 여태천 야구도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렌지색 점퍼를 입고 스탠드를 메우고 있었다. 처음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 바닥 사람들은 외다리인 줄 알았다. 짝다리를 짚고 선 폼..

한줄 詩 2018.02.08

푸른 뱀은 새가 되다 - 홍성식

푸른 뱀은 새가 되다 - 홍성식 아버지에게서 맡은 건 바람과 소주의 냄새였다 밤마다 이어지는 악몽 차가운 푸른 뱀은 여전히 아버지 어깨에 또아리 틀고 칠흑의 숲길을 달린다 놀라운 그 사건 이후 형형하던 아버지의 눈빛은 흐려지고 벼랑 근처를 배회하는 그림자가 마을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다 아주 가깝거나 요윈히 먼 문신(文身)의 아버지 밀알 하나도 숨기려 드는 궁핍의 손길들 모래 섞인 바람이 불고 새가 없는 동네의 햇볕 아래 아버지는 떨며 앉았다 여윈 어깨 위 푸른 뱀을 애써 감춘 채 보고 싶다 걸핏하면 윗통을 벗던 아버지의 젊은 몸 투박한 근육 위 꿈틀대던 생명 이미 오래전 날아가 화석의 기억으로만 남은 허물벗은 새 푸른 뱀 *시집, 아버지꽃, 화남 눈물이 아니라면 - 홍성식 유혹의 노래는 묘하게도 우울한..

한줄 詩 2018.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