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그의 일생 - 박남원

그의 일생 - 박남원 그의 전 재산이라고는 그의 두 귀와 머리카락과 단세포로 된 두 팔과 다리 그리고 상 하반신에 걸친 싸구려 한 벌의 옷뿐이었다. 그는 징집연령이 되어 19xx년 봄 어느 날 휴전선 근처 어딘가에 최종 배치되어 근무하게 되었는데 같은 해 비가 1~3미터를 구별 못하게 할 만큼 쏟아지는 우중의 철책선 근방에서 6.25때 매설된 지뢰를 잘못 밟아 그의 마지막 재산마저 깡그리 탕진해버렸다. 내가 그 이듬해인 19x1년 어느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가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에 가보았는데 그가 묻힌 자리에는 흔한 꽃 한송이 벌 한마리도 모여들지 않았다. 그가 남긴 유산이라고는 단조롭게 조각된 화강암 묘비와 아무 형용사도 덧붙이지 않은 묘비명과 입영하던 날 열차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친구인 나에게 ..

한줄 詩 2018.05.12

현기증 - 김윤환

현기증 - 김윤환 한 오 년 돌려막기로 아이를 키우고 늦깎이 공부도 했다 맹렬한 독촉전화와 뻔한 핑계, 기실 내 거짓이 들어날 때마다 이상하게도 부끄러움보다 고통의 쾌감으로 나는 들떴다 산다는 것이 중년의 허리에 지방이 붙듯 자기도 모르게 위선으로 띠를 두르고 그저 날마다 같은 거짓을 반복하는지 몰라 이제 내 거짓말에도 이자가 붙어 삶의 원금을 다 갉아 먹은 것은 아니었을까? 돌리고 돌려온 쳇바퀴, 그 현기증을 느낄 때마다 살아 있다고 살고 싶다고 내 몸은 소리쳤다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시와에세이 허리띠 - 김윤환 마지막 구멍 넓어지고 찢어져 새로 송곳을 찌를 만도 한데 고집스레 호흡을 들이킨다 몸통을 잃은 후에야 나이를 확인하는 고목처럼 잃어버린 자신만큼 허리에 둘러진 나이테 졸라맬수록 숨..

한줄 詩 2018.05.12

왜행성 134340에 부쳐 - 박주하

왜행성 134340에 부쳐 - 박주하 아무도 그대를 문밖에 세워두지 않았습니다 속눈썹 젖는 낮은 새벽 뒤뚱거려도 귀한 그림자는 맑은 연못에 묻어두었으니 귀 막고 돌아가는 명왕성이여 그대를 보내는 어둠 곁으로 어느덧 벅찬 바람의 발굽 소리도 잦아들었습니다 그대를 가만히 생각할 적에 맺히던 둥근 슬픔의 옥빛 무늬를 누군가 사소한 눈물이라 빈정거려도 좋습니다 가슴을 찌르며 나직이 들어오는 푸른 새벽빛을 그대의 미증유의 법으로 받아 삼키겠습니다 아무도 그대를 문밖에 세워주지 않았을뿐더러 나는 나의 수많은 문지방을 부끄러이 여겼기에 밤마다 메아리로 心經 읊었습니다 그 가을의 어둠 창궐했으나 般若의 무현금에 귀를 기울이고 나니 그대와의 이별도 이젠 견딜 만합니다 홀로 깊어가는 무서운 밤들 수북해도 자책의 무거운 방..

한줄 詩 2018.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