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너무 무겁고 너무 가벼운 허무 - 김인자

너무 무겁고 너무 가벼운 허무 - 김인자 이제 다시는 허무의 투망질에 생애를 걸지 않겠노라고 맹세한 적이 언제였나. 그러나 아침이 오면 다시 그물과 배를 손질하고 돛을 올렸다. 설마, 한 번쯤은 내 생애에 준비된 만선이 없을라구! 낡은 배를 띄우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그물 가득 걸려 올라오는 허무쯤이야 이제는 웃을 수도 있지만 아, 그렇지 어디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게 그물뿐이었나. 예전에 아버지는 일러주셨지. 그물이 아니면 낚시를 던져보라고, 저 바다 속에 전생을 걸고 단 한 마리라도 건져 올릴 고래가 있다면. *시집, 상어떼와 놀던 어린 시절, 여음 아름다운 것은 독이 있다 - 김인자 넓은 동해바다에서 끊임없이 나를 유혹해 오던 것은 해파리떼였다. 어디서부터 헤엄쳐왔는지 어느 땐 물위를 까맣게 덮..

한줄 詩 2018.05.06

어쩌면 오늘이 - 여태천

어쩌면 오늘이 - 여태천 하루 종일 보채던 아이가 한밤중에 품속으로 파고든다. 엄습하듯 생각의 먼 후대를 불러들이는 너. 너를 안고 불 꺼진 오늘을 천천히 걸어 본다. 납작해진 너를 안으면 안을수록 내가 나를 안고 있다는 생각 그 생각 하면 할수록 나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내가 아니라 너라는 생각 자고 나면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너는 눈을 또렷이 뜨고 무거워진 밤을 자꾸만 흔들어 깨웠던 것이다. 밤은 깊고 또 깊어져 이 밤의 공기를 다시 만질 수 없는 때도 있어서 오늘이 백년의 기억보다 더 깜깜하다. 그때마다 후대의 아주 먼 생각이 가만히 왔다가 가만히 가는 중이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시집,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민음사 속기 - 여태천 오후의 남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의 모..

한줄 詩 2018.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