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침 신파 - 허연

마루안 2018. 5. 11. 21:41



아침 신파 - 허연



아무리 생각해도 전철은 통제의 최소 단위다.

 

전철 문이 닫힌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때 개구리처럼 승강장에서 널브러지는 사람이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쯤 보는 일. 넘어진 그는 선택되지 못한다. 몇 초의 차이가 그를 내팽개친다. 그는 또 다음 열차에 도전할 것이다. 이번에는 좀 느긋하게.... 이른 아침 전철역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파다. 태워달라고 사정하고, 선택받기 위해 서로 밀치고, 떠나보낸 걸 안타까워하는 신파다. 전철에 매달리는 신파다.

 
언젠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여러 갈래로 뻗은 철길이
먹다 버린 생선 뼈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 문학과지성








역류성 식도염 - 허연

 


어떤 처량함이 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밥 알갱이들이 한 알 한 알 조개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꾸 집중하다 보면 손이 움직이고, 입이 열리고, 밥 알갱이들이 어두컴컴한 통로로 쏟아져 들어가는 일이 마치 석탄을 파내서 트럭에 싣는 일 같기도 하고, 불구덩이 위에 뿌리는 일 같기도 하다. 이 동작을 반복하다 울컥하는 순간이 있다. 밥을 퍼 넣는 손이 포클레인처럼 보이는 너무나 슬픈 순간이 있다. 손에 피가 돌지 않는 그런 순간이 있다.


나의 식도는 자주 막힌다. 막힌 통로에 적당한 시간 차를 두고 뭔가를 털어 넣어야 하는 건 아주 오래된 저주다. 먹어야 사는 저주는 생의 어느 순간에서든 균일하다. 이빨 하나 남지 않은 입을 오물거리며 감당하기 힘든 크기의 수저를 빨고 있는 노인네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입가의 조개껍질 같은 주름을 저주했다. 먹다가 생긴 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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